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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서울탈출기] ⑤ 귀촌 4년차 서른다섯, 시골에서 책방하며 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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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귀농·귀촌은 은퇴자와 노년층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 귀농·귀촌한 인구 중 2030은 44%로, 절반가량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이들은 도시를 떠나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2030 ‘프로 시골러’들은 서울에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일하고, 돈 벌고, 자아를 실현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팀이 한 달간 전국 팔도를 누비며 만난 다섯 명의 ‘도시 탈출기’를 소개합니다.

30대 초반, 어쩌면 귀촌하기 좋은 나이

전북 완주 고산에서 청년 공간 '림보책방'을 운영하는 홍미진 대표. 2017년 5월에 귀촌했다. 김경록 기자

전북 완주 고산에서 청년 공간 '림보책방'을 운영하는 홍미진 대표. 2017년 5월에 귀촌했다. 김경록 기자

전주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의 한 상가 2층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빼곡한 책과 널찍한 응접실이 나타난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다가 시골 이주 후 책방을 운영하고 싶었던 홍미진(35) 대표와 청년공간을 운영하려는 완주군의 뜻이 맞아 만들어진 ‘림보책방’이다.

홍 대표는 비교적 빨리 귀촌 계획을 세웠다. 할머니가 되어 시골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지만, 더 일찍 내려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의 삶을 떠올리자 한번 쯤 살아보고 싶었던 ‘전주’가 떠올랐다. 전북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낮에 농사짓고 밤에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꿈을 꾸고 내려왔지만 서울보다 더 서울 같아진 전주의 변화가 낯설었다. 그는 ‘더 시골 같은’ 지역을 찾아 나섰고, 전주 인근 완주에 자리를 잡았다.

녹록지 않은 시골 생활의 시작이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거금 1700만원을 날리기도 했고, 월세를 구한 뒤 1년을 그냥 놀기도 했다. 막연한 꿈이었던 시골 책방을 현실화시킨 건 2018년 즈음이다. 적당한 책방 자리를 찾던 중 완주군이 청년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 돼, 지금의 ‘림보책방’이 만들어졌다. 역시 서울에서 이주한 청년인 윤지은(33), 강소연(38) 대표와 함께 운영한다.

완주 고산 읍내리의 한 상가 2층에 위치한 림보책방.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과, 공유 서재, 머물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경록 기자

완주 고산 읍내리의 한 상가 2층에 위치한 림보책방.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과, 공유 서재, 머물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경록 기자

림보책방은 책방이면서 청년 공간이다. 노인들이 노인정에 가고, 유치원생이 유치원에 가듯 청년 비롯한 주민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한쪽엔 책을 판매하는 매대도 있고, 함께 책을 읽는 공유서재도 있다. 저녁마다 다양한 교실 프로그램이 열리고, 이 공간을 구심점으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아직은 군의 보조금으로 운영되지만 언젠간 책방 수입만으로 ‘자립’하고 싶다.

왜 서울을 떠났나
도시에서 영원히 살 거라 생각 안 했다. 그럼 차라리 기력이 좋을 때 내려가서 뭔가 해보자 싶었다. 서울에선 30대 중반만 넘어도 조직에서 ‘중진’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시골에선 30대면 병아리다. 새롭게 판을 짜보고 싶었다.  
왜 완주였나  
처음엔 전주였다. 대학생 때부터 매년 ‘전주 영화제’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건물이 낮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는데, 내려와 보니 옛날에 생각했던 그 전주가 아니었다. 딱 한 시간쯤 더 들어가 보니 원했던 풍경이 나왔다. 그게 완주였다. 그중에서도 고산은 귀촌 인구가 생각보다 많고 커뮤니티가 갖춰져 있는 편이었다.    
청년 및 고산 주민들이 시시 때때로 들러 머물 수 있는 공공적 성격을 띈 공간이다. 김경록 기자

청년 및 고산 주민들이 시시 때때로 들러 머물 수 있는 공공적 성격을 띈 공간이다. 김경록 기자

실제 살아보니 어떤가
시골에선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둡다. 도시에선 밤에도 뭔가가 굴러가고 있고, 그러다 보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자연스러운 리듬에 맞춰 산다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  
책방 운영으로 먹고살 수 있나  
청년 공간을 만들려는 완주군과 뜻이 맞아 지금은 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공공적 성격이 강하기에 책방 운영보다는 공간 제공 및 프로그램 운영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는 오후 7시만 넘어도 문 여는 가게가 드물고, 갈 곳이 없다. 청년은 물론 주민들이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자유롭게 책도 보고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사실 운이 좋은 케이스다. 하지만 늘 자립은 염두에 두고 있다. 기능을 보완해 다른 콘텐츠로 공간을 꾸려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왼쪽부터 홍미진, 강소연, 윤지은 대표. 셋 모두 서울에서 시골로 이주한 귀촌 청년들이다. 김경록 기자

왼쪽부터 홍미진, 강소연, 윤지은 대표. 셋 모두 서울에서 시골로 이주한 귀촌 청년들이다. 김경록 기자

귀촌을 꿈꾸는 2030에게 하고 싶은 말
자신에 대해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커피와 맛집이 중요한 사람이면 시골 생활은 힘들다. 포기가 안 되는 우선순위 같은 걸 정해보는 게 좋다. 시골에서 살면서 생각과 다른 점이 있을 때 본인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여긴 뭐가 이렇게 없어’라며 좌절하는 경우가 꽤 많다. 서울에서 살던 방식을 그대로 시골로 이식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완주=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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