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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생각뿐"…'라면 형제' 엄마 역시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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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 건물 2층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 중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사진 미추홀소방서

지난해 9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 건물 2층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 중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사진 미추홀소방서

인천의 보호자 없는 집에서 불이 나 초등생 형제 중 동생이 사망해 ‘인천 라면 형제’로 불린 사건의 어머니 역시 가정폭력 피해자로 밝혀졌다.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공개된 음성 파일에는 “그 시기에 제가 약 먹고 나쁜 생각만 들 때였다. 집에서 죽을 것 같았다”며 “애들한테 미안한 생각밖에 안 들고 그냥 집에 있기가 싫었다”고 말하는 어머니 A씨의 목소리가 담겼다.

사건을 최근까지 취재한 김새봄 뉴스타파 PD에 따르면 아이들의 부모는 오래전 이혼을 한 상태였으며 A씨 혼자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우울증약을 복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 A씨는 “아빠가 알코올 중독인 것처럼 엄청 취할 때까지 술을 많이 드셨다”며 “엎드려뻗쳐하고 엉덩이, 허벅지를 당구봉으로 맞았다”고 전했다. 다른 보호자도 없어 동생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맞았다고 A씨는 회상했다.

남편과 이혼하게 된 이유 역시 가정폭력이었다고 한다. 이혼 입증서면 등에는 “남편이 A씨뿐 아니라 형제에게도 수시로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결국 아동학대의 피해자가 방임이라는 형태의 아동학대 가해자가 된 셈이다.

또 형제가 부모의 방치 속에서 라면을 끓이려다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려지며 ‘라면 형제’로 불렸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를 앓는 형 B군(11)이 불장난을 하던 중 실수를 해 큰불로 이어졌다. B군은 형사 책임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로 사건은 내사 종결됐다.

김 PD는 “B군이 깨어나 자신이 라면 형제라고 불린다는 것을 기사 검색을 통해 알았다”며 “‘엄마가 자꾸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말 나쁜 사람은 나’라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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