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윤여정 새 역사 썼다, 韓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중앙일보

입력 2021.03.15 22:22

업데이트 2021.03.16 00:17

2012년 영화 '돈의 맛'으로 인터뷰할 당시 당시 배우 윤여정의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2년 영화 '돈의 맛'으로 인터뷰할 당시 당시 배우 윤여정의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흔 넷의 여배우 윤여정이 102년 역사의 한국영화사를 다시 썼다. 다음달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43) 감독의 영화 ‘미나리(MINARI)’로 한국 배우 사상 처음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15일(현지시간)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후보 명단에서 ‘미나리’는 작품상·남우주연상(스티븐 연)·감독상·각본상(이상 정이삭)·음악상(에밀 모세리) 등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저력을 과시했다. 한국계 미국인 에릭오(오수형) 감독의 신작 ‘오페라’는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정이삭 감독 '미나리' 작품상 등 6개 후보에
아버지 역 스티븐 연도 남우주연상 후보로
작년 '기생충' 이어 한국계 영화 저력 과시

12일 공개된 팟캐스트 '배우 언니' 스페셜 1탄, 뉴요커가 본 미국 '미나리' 현상. [사진 A24, 판씨네마]

12일 공개된 팟캐스트 '배우 언니' 스페셜 1탄, 뉴요커가 본 미국 '미나리' 현상. [사진 A24, 판씨네마]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 시골에 이주한 30대 부부가 농장을 일구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야기다. 정 감독 가족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이민 간 딸 모니카(한예리)의 뒷바라지를 위해 이국 땅에 미나리씨를 품고 간 친정어머니 순자를 소화했다. 그의 사위이자 가장 제이콥을 연기한 스티븐 연(38)도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어가 80% 이상인 영화에 한국계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서정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정이삭 감독은 지난해 봉준호 감독에 이어 감독·각본상을 동시에 노리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감독 봉준호)에 이어 2년 연속 한국계 감독·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한국 배우인 윤여정·한예리는 물론, 1978년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 정 감독이나 가장 제이콥 역의 스티븐 연, 아역배우 앨런 김과 노엘 케이트 조 모두가 한국계다.

영화 '미나리'의 주연배우들. [연합뉴스]

영화 '미나리'의 주연배우들. [연합뉴스]

“전형적인 할머니나 전형적인 엄마, 그런 거 하기 싫다. 조금 다르게 하고 싶은 게 내 필생의 목적이다.” ‘미나리’로 한국 배우 첫 오스카 노미네이트라는 금자탑을 쌓은 윤여정의 연기 지론이다. 그 말처럼 손자 데이빗(앨런 김)에게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의 생명력을 역설하는 달관의 연기는 언어 장벽을 넘어서 세계 관객을 흔들었다. ‘미나리’는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미국 안팎에서 91개의 상을 휩쓸었고 그 중 윤여정의 여우조연상만 33개다. 보수적인 아카데미에서 아시아계가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윤여정이 5번째. 그가 수상할 경우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가 된다. 윤여정은 다음달 25일 시상식에서 마리아 바칼로바(‘보랏 속편’), 글렌 클로즈(‘힐빌리의 노래’), 올리비아 콜맨(‘더 파더’), 아만다 사이프리드(‘맹크’)와 트로피를 놓고 경쟁하게 된다.

윤여정은 1966년 TBC TV 탤런트 공채로 데뷔했다. 스크린은 김기영 감독의 컬러판 ‘화녀’(1971)가 첫 작품이다. 데뷔작부터 각종 연기상을 휩쓸었던 젊은 시절을 지나 가수 조영남과 이혼 후 가족 부양을 하느라 본인 표현으론 “닥치는 대로” 다작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60살 넘어서부터 사치스럽게 살려고 마음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일하겠다는 사치.” 이런 의지로 소위 작가주의 영화들에서도 특유의 진취적이고 개성 있는 아우라를 발산했다. ‘하녀’ ‘돈의 맛’(이상 감독 임상수) ‘하하하’ ‘다른 나라에서’(감독 홍상수) 등으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여러 차례 밟았고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로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지난 3월3일 개봉했다. [사진 판씨네마]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지난 3월3일 개봉했다. [사진 판씨네마]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지난 3월3일 개봉했다. [사진 판씨네마]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지난 3월3일 개봉했다. [사진 판씨네마]

팟캐스트 '배우 언니' 1화 '미나리'의 윤여정. [사진 배우 언니]

팟캐스트 '배우 언니' 1화 '미나리'의 윤여정. [사진 배우 언니]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재미교포 배우 스티븐 연(38)은 미국에선 TV 드라마 ‘워킹 데드’ 등으로 알려졌다.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출연한 데 이어 ‘미나리’에선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한국 가장을 절실하게 연기했다. 수상할 경우 아시아계로는 세 번째다. 앞서 몽골계인 율 브리너가 제29회 시상식에서 ‘왕과 나’(1956)로 아시아계 최초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이어 인도계 영국인 벤 킹슬리가 ‘간디’(1982)로 수상한 바 있다.

이날 ‘미나리’는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포함해 예상을 뛰어넘는 6개 부문에 호명됐다. 지난달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당시 정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진심의 언어(the language of the heart)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또한 영화를 만든 가장 큰 이유로 “딸이 7살이 됐을 때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그때 느꼈던 것을 되새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정 감독은 영어로 각본을 썼다가 이를 한국어로 고쳤고 이 과정에서 윤여정 등이 자연스러운 구어체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미나리’는 영어 비중을 따지는 골든글로브에선 작품상 후보에 들지 못했지만 아카데미는 그 같은 제한이 없어 후보 지명이 기대됐다. 작품상 경쟁작은 ‘더 파더’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 ‘맹크’ ‘노매드랜드’ ‘프라미싱 영 우먼’ ‘사운드 오브 메탈’ ‘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등이다.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가 대표로 있는 제작사 플랜B 엔터테인먼트와 A24가 공동제작했다. 국내에선 지난 3일 개봉해 14일까지 5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강혜란·나원정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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