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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의 도살자’ 마빈 헤글러도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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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983년 두란과 대결을 펼친 헤글러. [AP=연합뉴스]

1983년 두란과 대결을 펼친 헤글러. [AP=연합뉴스]

전설적인 복서 마빈 헤글러(미국)가 타계했다. 향년 66세.

1980년대 미들급 전성기 연 주역 #두란·헌즈·레너드와 F4 명성 #3대 기구 통합 챔프, 성실한 복서

헤글러의 부인인 케이 G. 헤글러는 1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주 슬픈 발표를 하게 돼 유감이다. 오늘 불행하게도 내 사랑하는 남편 ‘마블러스 마빈(Marvelous Marvin·헤글러 별칭)’이 이곳 뉴햄프셔의 집에서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공개했다. 헤글러는 슈거 레이 레너드(65·미국), 로베르토 두란(70·파나마), 토마스 헌즈(63·미국)와 함께 1980년대 중(中)량급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F4’(패뷸러스 4) 중 한 명이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의 빈민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헤글러는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남들과 싸우지 말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길거리 싸움 대신 복싱을 배웠다. 그는 18세였던 1973년 전미 아마추어 선수권 미들급 정상에 오른 뒤, 곧이어 프로복싱에 뛰어들었다.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80년 알란 민터를 꺾고 세계복싱평의회(WBC), 세계복싱협회(WBA) 미들급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헤글러가 더욱 유명해진 건 라이벌과 잇단 맞대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1983년 국제복싱연맹(IBF) 미들급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어 미들급으로 체급을 올린 두란을 맞아 15회 판정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두란의 세 체급 석권을 막았다. 1985년엔 역시 미들급으로 체급을 올린 헌즈마저 3라운드 TKO로 꺾었다. 은퇴한 레너드가 이 경기를 해설했다.

헤글러는 1987년 은퇴를 번복하고 링에 돌아온 레너드와 맞붙었다. 레너드와 대결하기 위해 챔피언 벨트 3개 중 2개를 포기했다. 승부는 그의 판정패로 끝났지만, 판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이 그의 우세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레너드는 그의 재대결 요청을 거부한 채 은퇴했고, 1988년 그 역시 “기다리는 데 지쳤다”며 은퇴를 발표했다. 통산 전적 67전 62승(52KO) 2무 3패.

은퇴 후 이탈리아에 건너가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전 부인 베르타와 사이에 5명의 자녀를 뒀으며, 현 부인 케이는 이탈리아에서 만났다. 1993년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과 세계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화려함보다는 성실함으로 다져진 탄탄한 복싱을 보여준 덕분에 ‘마블러스(경이로운) 마빈’으로 칭송받았다. 레너드는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한 인터뷰에서 “(헤글러와 대결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다고 느꼈던 경기였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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