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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잃어버린 10년' 현실화…이재용 재판 최소 3년 걸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대해 재판이 11일 재개됐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사진은 이 부회장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대해 재판이 11일 재개됐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사진은 이 부회장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정회계 의혹에 대한 ‘옥중 재판’이 재개됐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 1월 구속수감된 가운데, 경영 승계 관련 재판을 둘러싼 장기간 법정 공방이 예상돼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불법 합병” vs “인정 못 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 박정제·박사랑·권성수)는 11일 오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법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명에 대한 정식 공판을 위한 의견을 검찰과 이 부회장 측으로부터 들었다. 지난해 10월 22일 이후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이었다. 당초 올 1월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한 차례 연기됐다. 이 부회장 등은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1시간 넘게 공소 사실의 요지를 설명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관련자들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벌인 불법 합병, 회계부정 사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이 많은 지분을 보유한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모두 정상적인 합병 과정이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합병은 사업상 필요했으며 규제환경 변화 대응과 지배구조 개선, 경영권 안정화 측면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물산의 주가는 당시 지속적 내림세, 제일모직은 지속적 오름세였다며 “합병이 다른 시점에 이뤄졌다면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더 불리해졌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너 부재’로 굵직한 결정 지체 우려 

이번 재판은 국정농단보다 논쟁 이슈가 훨씬 복잡한 데다 증거 기록만 19만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사안이 방대하다. 법조계에서는 판결까지 최소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관측한다. 삼성과 재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삼성물산 불법 합병과 회계부정 혐의 재판의 방청권 추첨을 위해 응모자들이 추첨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삼성물산 불법 합병과 회계부정 혐의 재판의 방청권 추첨을 위해 응모자들이 추첨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국내외 경영 상황에 삼성이 ‘총수 부재’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특히 갈수록 치열해지는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 등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대한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반도체 초호황(슈퍼사이클)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시장 규모가 지난해 663억 달러(약 74조원)에서 내년 1044억 달러(약 118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트너·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 등은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이 지난해보다 8.7% 증가한 4775억 달러(약 5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TSMC, 미국·일본과 ‘반도체 동맹’

이에 따라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를 급격하게 늘리고 추세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인텔·삼성전자·TSMC·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5개사는 올해 설비 투자에 사상 최대치인 952억 달러(약 106조원)를 투입한다. 지난해(743억 달러·약 83조원)보다 30%가량 늘었다.

삼성전자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제시하고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 대대적으로 파운드리 부문 강화에 나섰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54%, 삼성전자 17%였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추정 점유율은 TSMC가 56%, 삼성전자 18%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TSMC의 경우 생산 능력이 월 110만 장이고, 삼성전자는 43만 장 수준”이라며 “세계 1위 달성이 목표라면 설비 투자를 최소한 2.5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커지는 세계 반도체 시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옴디아]

커지는 세계 반도체 시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옴디아]

“타이밍 놓쳐 도태된 일본처럼 될 수 있어”

경쟁자인 TSMC는 올해 최대 280억 달러(약 31조원)의 설비 투자 계획을 밝힌 상태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과 대만, 일본 3국 간 ‘반도체 동맹’을 맺었다. 설계는 미국, 소재·장비는 일본, 제조는 대만이 맡는 식이라 삼성전자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TSMC의 공격적 행보와 달리,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를 놓고 장고 중이다. 기존 텍사스 오스틴이 유력하지만 애리조나주 피닉스, 뉴욕주 제네시카운티 등 후보지 가운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대규모 M&A는 더 어렵다. 삼성전자는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이 121조원에 이른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화하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관련 반도체 기업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의 옥중 경영 시기에 대규모 M&A를 진행했던 사례가 없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산업은 국가 간 치열한 경쟁과 끈끈한 협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발전할 수 있는데, 총수 부재 상황인 삼성전자는 일종의 ‘왕따’가 되는 모양새여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안 전무는 이어 “1990~2000년대 반도체 강국이던 일본이 투자 결정 속도가 늦어지면서, 당시 공격적이고 과감하게 투자를 감행한 삼성전자에 밀려나 결국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된 바 있다”며 “삼성이 의사결정 타이밍을 반복적으로 놓치다 보면 이런 일본의 선례를 따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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