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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가 피눈물 나게 한다’…‘주민들 의심’ 대구 연호지구도 LH 불똥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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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지구 발(發) 투기 의혹이 대구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LH 직원들이 대구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등지에서도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르포] “LH 관계자가 전입했을지 누가 알겠노”

의혹은 지난 8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했다. 민변 등은 "LH 직원들이 대구 연호지구, 경남 김해, 경기 남양주 왕숙, 판교 등에서도 사전 개발 정보를 이용한 투기나 분양권 취득에 연루됐다는 제보가 있다"며 "해당 지역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JTBC도 최근 LH 한 직원의 사내 메신저를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직원은 “대구 연호지구는 무조건 오를 거라…. 공동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10일 대구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인근에 붙은 토지보상 갈등 관련 현수막. 김정석 기자

10일 대구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인근에 붙은 토지보상 갈등 관련 현수막. 김정석 기자

‘LH가 피눈물 나게 한다’ 

갑자기 불똥이 튄 대구 연호지구는 어떤 곳일까. 현장에 투기 의혹을 제기할 만한 불법적인 움직임은 있을까.

10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연호네거리. LH가 공공주택지구로 개발하고 있는 연호지구의 중심이다. 평소에는 대구시와 경산시를 오가는 차량이 이용하는 평범한 도로지만, 최근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국민의 공분을 사면서 이곳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관심을 반영하듯 연호네거리에는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가득 나붙어 있었다. 연호지구에 사는 주민들의 토지보상 갈등과 관련된 내용과 LH의 투기 의혹을 지적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다. ‘코로나로 눈물 나게 하고 LH가 피눈물 나게 한다’, ‘악덕지주님 피맛이 좋습니까’, ‘시장님·구청장님 LH 횡포를 보고만 계십니까’ 등 강한 어조의 문구들이 즐비했다.

10일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인근에 토지보상 갈등 관련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정석 기자

10일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인근에 토지보상 갈등 관련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김정석 기자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연호지구는 평범한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1층 가정집과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로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창고 건물도 간간이 세워져 있었다. 좁은 콘크리트 도로에 트랙터와 경운기가 오가고 과수원에 물을 뿌리고 있는 농민도 눈에 띄었다. 민가 중간중간 붙어 있는 토지 보상 관련 안내문은 이곳에서 택지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화로운 마을 풍경과는 달리 주민들은 한껏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외지인들이 연호지구에 투기를 위해 땅을 마구 사들였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돌고 있는 상황에서 LH의 투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실제 시골 마을 안에 의심스러운 빌라나 컨테이너 건물들이 간간이 세워져 있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이 대표적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필로티 구조의 다세대주택처럼 보이지만 1층 주차장에 타이어가 펑크난 채 방치된 차량이 있거나 우편함에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들이 잔뜩 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건물 뒤쪽의 전기 사용 계량기도 12개가 모두 움직이지 않은 채 멈춰 있어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LH 직원 가족이나 지인이 전입 신고 했을지…."

인근 주민들은 “다세대주택에 사람이 드나드는 걸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 주민은 “보상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 거주를 해야 하므로 이런 집에 전입신고를 해놨다는 말들이 파다하다”며 “최근 LH 직원이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뉴스에서 봤는데 LH 직원 가족이나 지인이 일찌감치 이곳에 전입 신고를 했을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10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내 한 빌라 우편함에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이 쌓여 있다. 김정석 기자

10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연호공공택지지구 내 한 빌라 우편함에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이 쌓여 있다. 김정석 기자

이에 대해 LH 한 간부는 “연호지구에 토지 보상 갈등은 있지만, 자사 직원의 부동산 투기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토지 보상 과정에서의 갈등으로 인해 지주 명단을 손에 든채 보상 절차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직원이 연루된 땅이나 건물이 있으면 알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다. 그는 “최근 방송 보도에 땅값이 오를 것이라고 나온 직원 역시 내부적으로 조사해보니, 말로만 그런 것이지 실제 연호지구에 땅을 매입해둔 것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연호지구는 2018년 5월 공공주택지구 사업지로 공식화됐다. 사업 대상지는 89만여㎡. 마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곳이다. LH는 이곳에 땅을 모두 사들여 2024년 말까지 40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고, 단독주택단지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는 지주 1000여명을 상대로 토지와 일부 건물 보상 절차를 진행 중이다. 토지 보상은 60% 정도 진행된 상태다.

LH 한 간부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도 최종 결과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에 나서 “이번 사태를 공공의 신뢰를 좌우하는 매우 엄중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앞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투기 의혹을 엄정하게 조사하고 투기행위자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으로 처벌하는 한편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도 신속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김윤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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