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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말기암 환자에 희망 심어줘요"

중앙일보

입력

"20여년 전 이(齒)가 신통치 않아 트럼펫을 놓은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다시 악기를 잡았어요."

충남 천안 광제의원의 김용균(74)원장은 한껏 멋을 낸 예복이 어색한 듯 헛기침을 몇 번이나 했다.

지난 24일 오후 8시 천안시의 한 뷔페 식당. 실내악 연주단인 '천안 색소폰 앙상블' 멤버 9명이 지인의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단장인 김 원장은 "서툰 솜씨지만 사랑이 가득찬 화음이니 즐겁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 앙상블은 30대에서 70대까지의 의사.직장인 등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모여 음악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다. 지난해 11월 결성된 이후 매달 한번 말기환자 병동을 찾아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복음성가는 물론 '만남' '사랑으로' 등 대중가요도 연주한다. 앙상블 결성을 주도한 사람은 6년째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천안 사랑의 호스피스' 설립자인 심석규(46.남천안 제일의원장)씨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색소폰을 배우던 심 원장은 '합주단을 만들면 더 좋겠다'싶어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심 원장은 김 원장이 트럼펫을 오랫동안 불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김 원장은 취지를 전해듣고 심원장이 건네는 색소폰에 입을 대본 뒤 바로 악기를 구입했다. 김 원장은 "키가 작고 힘도 부쳐 조그맣고 불기 쉬운 알토(색소폰)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친동생이자 도올 김용옥 교수의 친형이다.

이어 심 원장과 같은 교회에 다니던 김춘호(43.남서울대 근무).이철희(44.호서대 근무)씨가 가세했다. 심 원장이 생활정보지에 낸 광고를 보고 이세희(48.자영업).배수봉(43.자영업)씨도 합류했다. 지난달엔 군악대 출신으로 40여년의 색소폰 연주 경력을 갖고 있는 퇴직 공무원 오재홍(64)씨가 동참했다. 김 원장과 심 원장은 "청소년 수용시설 등 연주를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사랑의 화음을 들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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