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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소유물 아냐”...일가족 살해한 40대에 대법 17년형 확정

중앙일보

입력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하고 아내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에게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가족이라고 해서 생명을 마음대로 거둔 건 용납받을 수 없는 행위라는 게 재판부의 일침이다.

경제적 처지 비관…일가족 살해

정모(46)씨는 아내가 경제적 어려움에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자 범행을 결심했다. 아내는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다 30억원 상당의 빚을 져 채권자로부터 독촉을 받아왔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정씨는 아내와 동반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함께 살던 자신의 어머니와 아들의 목숨을 먼저 거두기로 했다.

정씨는 지난해 4월 4일 오후 9시 30분께 부인과 함께 자신의 어머니와 당시 12살이던 아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질소 가스를 주입해 숨지게 했다. 다음날 정씨는 아내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는데 아내는 숨지고 정씨만 살아 남았다.

이미지. 연합뉴스

이미지. 연합뉴스

정씨는 지난해 8월 부모와 자녀를 살해(존속살해ㆍ살인)하고 아내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자살방조)한 혐의까지 더해 법정에 섰다. 정씨는 “자신과 아내가 죽고 나면 일가족이 견디기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 판단했다”며 범행 이유를 설명했다.

“생명은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

1심은 정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가장 존귀하고 절대적 가치“라며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부모를 살해하고 자식의 생명을 빼앗는 등의 살인행위에 대해선 무겁게 처벌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 이미지. 뉴스1

법원 이미지. 뉴스1

法 ‘가족 동반자살’에 일침 

2심은 정씨의 1심 형량이 가볍다고 보고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모친 및 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을 부양했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독립된 인격체인 피해자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며 “설령 피고인 자신도 자살할 생각이었다고 하더라도 참혹한 결과에 대한 중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동반자살이 ‘남은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정씨에겐 일침을 가했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은) 피고인과 처의 일방적 생각이었을 뿐이고 모친과 아들은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갑자기 살해당해 소중한 생명을 빼앗겼다”며 “가족 동반자살은 가족을 별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도 “양형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사정을 참작하더라도 원심 선고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지난달 10일 형을 확정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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