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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이제는 산업이다] 진료서비스 나쁘면 주가 하락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22일 샴 쌍둥이 사랑.지혜양의 분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싱가포르 래플즈 병원.

1997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이 병원 주가는 수술 성공 후 한때 10% 이상 치솟았다. 병원이 유명해지면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보름 전 이란의 성인 샴쌍둥이 분리 수술이 실패했을 때 10% 가까이 떨어졌던 주가를 회복한 것이다.

시장의 판단은 옳았다. 지난해 이 병원 매출은 9900만 싱가포르달러(약 700억원)로 전년보다 12.6%, 순익은 810만싱가포르달러(약 57억원)로 78.9%나 늘었다.

거꾸로 진료서비스가 나쁘다는 평판이 돌면 주가가 떨어진다. 병원 입장에선 생존을 위해 의료의 질을 높일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아시아 메딕. 의사 7명에 연매출 40억원 남짓한 작은 병원이지만 역시 상장기업이다. 이 병원은 지난해 7월 대당 70억원이 넘는 최신 양전자 단층촬영장치(PET/CT)를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치했다.

이 병원 대표 도미닉 얼 박사는 "의료장비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하고 투자를 받아 기계를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은행 빚이 아니라 증자한 주식을 넘겨 자금을 조달했다.

아시아 '의료 허브(중심)'를 꿈꾸는 싱가포르의 일류 병원들은 이처럼 주식회사 형태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13명의 치과의사 등 60명의 직원을 둔 중국 상하이 블루쉴드 치과병원. 지난 3월 초 상하이 훙차오(虹橋)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양젠(楊健.38) 대표는 유창한 영어로 "현재 5개인 지점을 수년 내에 20개로 늘려 상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의사 아닌 일반인이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을 설립해 상장하고 매매할 수 있다.

의료를 산업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 2월 서울대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이 사람 난자를 이용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이사장 노성일). 세계적인 업적을 냈지만 경영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환자 진료로 24억4800여만원을 벌었으나 13억3300여만원을 이자로 냈다. 지난 5년간 연구소와 병원을 짓느라 188억2600만원의 빚을 졌다. 盧이사장은 자신의 아파트.저축 등 전재산 85억2000여만원을 '올 인'하고도 빚더미에 올라 있다.

미즈메디와 래플즈병원을 비교해 보자. 래플즈 병원의 영업이익은 2002년 470만싱가포르달러(약 33억원)로 미즈메디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래플즈병원은 이자로 6000여만원을 냈을 뿐이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때 빚을 내지 않고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盧이사장은 "출자로 자본을 끌어와 연구.운영비에 쓸 수 있다면 줄기세포 기술 발전이 빨라지고 난치병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국내 의료법은 주식회사형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도 병원에 재투자해야지 투자자들이 가져갈 수 없다.

이러니 국내 병원들은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나간다. SK차이나는 지난달 23일 베이징시 차오양구에 SK아이캉(愛康) 병원을 개설했다. 예치과.고운세상피부과.우리들병원 등 경쟁력을 인정받은 국내 병원들도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고운세상 피부과 안건영 원장은 "비영리 병원으로 묶어뒀다가 문호가 열리면 경쟁력 있는 외국병원에 의료 시장을 다 내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정철근.이승녕.권근영 기자, 오병상 런던 특파원,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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