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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09:32:14

[더오래]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인 어머니산, 지리산

중앙일보

입력 2021.02.17 13:00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11)

“다양한 문화를 잉태시킨 지혜로운 산. 남원 사람들의 3대 풍류 중 하나는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남원역은 주말마다 울긋불긋한 양말을 신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대학생이나 등산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지리산 등반에 필요한 교통수단, 바로 전라선 열차가 남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원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었다.

내가 굳이 이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오늘날 다양한 남원의 문화를 잉태시키고 발전시킨 근원이 ‘어머니 산’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리산으로 ‘남원사랑 이야기’의 최종편을 장식하려 한다.

지리산의 제2봉 해발 1732m 반야봉 표지석(좌).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수령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지리산 천년송(우). 매년 정월 초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자료 양심묵]

지리산의 제2봉 해발 1732m 반야봉 표지석(좌).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수령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지리산 천년송(우). 매년 정월 초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자료 양심묵]

예로부터 남원 사람들은 3가지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하나는 활을 쏘는 것이었고, 둘째는 북을 치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지리산에 오른 것이었다고 한다. 활쏘기가 기와 예를 통한 정신수양이었다면, 북을 치는 것은 남원이 판소리에 바탕을 둔 소리의 고장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낸 단편적인 예였다.

여기에 지리산에 오르며 산수를 벗하고, 호연지기를 키우며 심신을 닦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여겼다. 한마디로 남원 사람들은 자연을 벗하고 즐기는 풍류적인 삶을 즐겼다.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지리산

지리산은 ‘지리산(智異山)’,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해발 1915m의 천왕봉을 주봉으로 총면적 483.022㎢이다.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그 속에 824종의 식물과 421종의 동물이 살고 있어 백두산·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명산으로 꼽힌다.

원시림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실비단 폭포(좌). 5월 진홍빛 화원으로 변한 지리산 바래봉 철쭉(우).

원시림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실비단 폭포(좌). 5월 진홍빛 화원으로 변한 지리산 바래봉 철쭉(우).

일찍이 성리학에 밝았던 조선시대 선비들도 지리산에 오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해 김종직·유몽인· 김일손·정여창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선비들은 지리산을 오르는 것을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여겼고, 도가의 신선 사상이 깃든 삼신산 중 하나로 인식하기도 했다.

이는『택리지』 산수 편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지리산은 남해 가에 있다. 이 산은 백두산의 큰 맥이 다하면서 이루어진 산으로, 이 때문에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 한라산(漢拏山)을 영주산(瀛洲山)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른바 삼신산(三神山)”이라고 기록돼 있다.

정철에 의해 만들어진 삼신산은 중국 전설에 발해에 있다고 하는 전설의 신산으로, 선인들이 살며 불로불사의 약이 있다고 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삼신산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산이 지리산이라고 할 정도니 가히 짐작이 가지 않는가.

오색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달궁계곡의 가을(좌). 만인의 복을 누리며 산다는 만복대(우).

오색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달궁계곡의 가을(좌). 만인의 복을 누리며 산다는 만복대(우).

어쨌든, 이렇게 영험한 지리산은 아흔아홉 지리산 골짜기가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그 물줄기를 텃밭으로 남원에서는 춘향전·흥부전·심청전·변강쇠전과 같은 고전이 탄생했고, 동편제라는 판소리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또 소설 『지리산』, 『태백산맥』, 『토지』, 『혼불』 등 현대문학의 대작이 탄생했다. 다양한 문화를 잉태시킨 곳이 바로 이 지혜로운 산, 지리산이라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지리산을 두고 ‘어머니 품 같은 산’이라고도 말한다. 왜일까. 그 이유를 한참 곱씹다 보니, 지리산은 부드러운 능선과 산세 뒤로 마치 어미가 자식의 모든 것을 감싸고 포용하듯, 모든 것을 수용하고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일례로 지리산에는 불교·유교·도교·민간신앙 등 다양한 종교가 깃들어 있어도 그간 다툼 한 번이 없었다. 죄지은 사람이나 도망자의 은신처와 피난처가 돼준 것은 물론, 역사의 격동기 때고 언저리를 내어주었다. 지리산은 빨치산의 생활상, 군경의 토벌 상황과 양민들의 고통이 얼룩져 있다.

이러한 포용성에 광활한 대자연의 비경까지 갖추고 있어서인지,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다녀가고 싶어 가는 명산으로 지리산을 꼽나 보다.

요즘은 교통이 발달해 누구든 더 쉽게 지리산을 오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구룡계곡에서 정령치, 성삼재, 달궁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일주는 하이웨이를 통해 자동차 여행으로도 가능하다. 특히 정령치는 겨울철에는 안전을 위해 도로 통행이 통제되지만, 다른 때에는 남원시에서 운행하는 정령치 순환 버스를 통해 지리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남원에서 시작되는 총 295㎞,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도보길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코스도 좋다. 이 코스도 지리산을 즐기는 또 다른 백미 코스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 해발 1172m의 고개인 정령치에 가면 시인 이원규의 시에 곡을 붙여 안치환이 부른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란 노래비가 있다.

그 내용은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중략)…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 나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언제나 첫 마음이니” 라는.

나는 정령치에 다다를 때마다 항상 이 노래비를 바라보며 지리산에 대한 자세를 한 번씩 다잡는다.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라니. 소용돌이치는 세상사에서 늘 첫 마음일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마음이다. 의연한 지리산이 선사하는 철학이 기가 막히다.

얼마 전에 입춘이 지났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는 요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여러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만, 대자연이 선사하는 지리산의 실록과 생명력은 이와는 별개다. 그런 만큼,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지리산에서 발견하기 바란다. 노래비 내용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기 바란다.

지리산의 깃대종으로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지리산의 봄 전령사 히어리 꽃.

지리산의 깃대종으로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지리산의 봄 전령사 히어리 꽃.

긴 세월 동안 남원 사람들이 오른 산 지리산. 다양한 문화가 잉태된 이곳, 늘 첫 마음으로 사람들을 반겨주는 지리산에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남원을 더 알아가기 원한다. 지리산으로 귀결되는 ‘남원’을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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