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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짧게 살다간 작가의 ‘혼불 정신’길이 남을 문화도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8)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았다.”

예로부터 충·효·열·예의 고장이라 불리는 남원은 한국 고전문학의 산실이다. 그런 남원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역사와 문화자원을 보유한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남원이 그러한 정체성을 갖게 된 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와 『최척전』, 『춘향전』, 『흥부전』 등 소설의 배경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라는 프레임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여기에 남원을 배경으로 쓴 현대문학의 백미인 대하소설 『혼불』까지 더해져, 남원의 문학적 바탕이 얼마나 넓고 풍부한지를 시시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몰락해 가는 남원의 양반가 매안 이씨 문중과 그 속에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상민 거멍굴 사람들의 고난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등 작가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아름다운 국어로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혼불문학관 전경(좌). 혼불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소설 혼불(우). [사진 양심묵]

혼불문학관 전경(좌). 혼불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소설 혼불(우). [사진 양심묵]

특히 작가는 매안 이씨 문중의 종부로 결혼해 1년 만에 청상과부가 된 청암 부인, 청암 부인의 양자로 들인 시동생의 장자 이기채, 이씨 문중의 장손 강모, 청암 부인의 뒤를 이어 종부가 되는 허효원 그 외 강태, 춘복, 강실, 강호, 기채 등 등장인물을 통해 무너져 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와 상민의 삶 속에 일어나는 사건과 암울한 시기의 민족성을 작품에 담았다.

『혼불』이 우리 앞에 선을 보인 건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 소설 공모에 당선돼 연재되면서다. 『혼불』 2부는 1988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기 시작해 19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 동안 계속돼, 당시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때 육필로 쓴 원고지만 1만 2000장에 달했다고 한다. 또 1996년까지 전 10권이 완간되는데 쓴 원고지만 4만6000장에 이르고, 6000여 가지의 어휘를 사용했다.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바로 삭녕 최 씨로, 본적은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이며 전주에서 1947년 10월 만추의 계절에 태어나 1998년 12월 51세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최명희다. 그는 소설 『혼불』에서 엄숙한 관혼상제의 의식에서부터 일상적 풍속이나 관습, 한국인의 세시 풍속, 음식, 노래 등에 이르기까지 그 유래와 이치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인 생활의 모든 면모를 상세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또 작가의 고향인 전주와 남원을 배경으로 전라도 토속어를 사용, 향토적 분위기를 살리고 생동감을 주면서 한국 문화와 정신을 예술적 혼으로 승화시켰다.

노적봉 닭벼슬봉 삭녕최씨 집성촌 노봉마을(좌). 혼불문학관과 청호저수지 모습(우).

노적봉 닭벼슬봉 삭녕최씨 집성촌 노봉마을(좌). 혼불문학관과 청호저수지 모습(우).

소설 『혼불』의 배경인 사매면 서도리 닭벼슬봉 아래 지리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에 혼불문학관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남원시에서는 『혼불』과 작가 최명희 선생의 문학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전승,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04년 10월에 국고와 지방비 포함 49억원을 들여서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을 개관했다. 이곳에서 언제든 최명희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와 함께 소설 속 장면을 디오라마로 만날 수 있다.

혼불문학관 전경(좌). 최명희 작가의 집무실을 꾸며 놓은 혼불문학관(우).

혼불문학관 전경(좌). 최명희 작가의 집무실을 꾸며 놓은 혼불문학관(우).

혼불문학관으로 가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역사건물로 소설 속 효원이 이용했던 서도역이 있다. 청암 부인이 노적봉과 벼슬봉의 기운을 가둬 저수지를 만들면 그 기운이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만한 곳’이라는 청호저수지가 2년여의 공사를 거쳐 조성돼 있으며, 호성암의 호성암 마애불 등 가는 곳마다 눈길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마당 바위에 새겨진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좌). 닭벼슬봉 아래 바위에 새겨진 노적봉(호성암)마애불(우).

마당 바위에 새겨진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좌). 닭벼슬봉 아래 바위에 새겨진 노적봉(호성암)마애불(우).

전주에도 최명희 문학관이 있지만 소설 『혼불』의 배경지가 남원 사매면 노봉마을이었고, 작가의 문학적 세계와 ‘혼불 정신’이 현재 남원 혼불문학관에서 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은 남원만의 문학적 자산이다.

혼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역 서도역(좌).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새암을 이뤄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길 바라는 최명희 작가의 뜻을 담아 이름 붙인 새암 바위(우).

혼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역 서도역(좌).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새암을 이뤄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길 바라는 최명희 작가의 뜻을 담아 이름 붙인 새암 바위(우).

작가는 난소암 투병 중에도 제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며 자료를 정리했다. 끝내 작고해『혼불』은 미완성됐지만, 작가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혼불』 집필에 집념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작가는 짧은 생을 살다 떠났지만『혼불』을 남원의 또 하나의 문학적 유산으로 남겼다. 그가 남긴 문학세계와 정신이 이곳, 남원 혼불문학관에 존재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유산과 정신이 백대 천손까지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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