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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원 운봉 고원서 가야 문화 꽃 피운 기문국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7) 

백두대간 동쪽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은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를 생산해낸 창의적 땅이었다. 특히 남원의 운봉 고원지대는 기문 가야를 찬란하게 꽃 피운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통일신라 경덕왕 때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 지금의 운봉에 들어와 50여년간 30여 곡을 창작해 국악의 성지로 만들었고, 고려 말 이성계는 운봉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황산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것뿐이랴. 조선 말기 활동했던 가왕 송흥록은 남성적이며 웅장하고 청담한 동편제를 이곳 운봉에서 만들어 동편제 소리의 본향을 탄생시켰다.

게다가 조선 중기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선 신선의 땅이라고 하는 운봉고원을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살기 좋은 열 곳을 일컫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았으며, 예로부터 정치와 국방의 요충지였다.

사적 제542호 남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40 여기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좌). 2013년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발굴 모습(우). [사진 양심묵]

사적 제542호 남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40 여기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좌). 2013년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발굴 모습(우). [사진 양심묵]

나는 때때로 평야부 남원이 지닌 역사문화와 산간부 운봉이 갖는 역사문화가 참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 차이는 몇 년 사이 운봉이 고대 가야사의 새로운 키워드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면서 더 벌어졌던 것 같다.

과거 가야는 1세기에서 6세기까지 국가연맹으로 경상도에 존재했으며, 금관가야·대가야·아라가야·소가야 등 여러 정치 체제가 결집한 집합체라 여겨져 왔기에 전라북도 남원의 운봉고원을 중심으로 고분에서 쏟아져 나온 가야의 부장 유물에 고고학자들은 주목했다.

지금까지 운봉고원의 가야유적이 조사된 것을 보면 180 여기의 중대형 고총이 산재해 있고 철을 생산했던 제철 유적 또한 40여 개소에 이르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 됐다.

특히 이곳 운봉고원에 존재했던 가야의 기문국(己汶國)은 철을 다루는 데 있어 그 어느 곳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은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의『양직공도』, 일본의 『일본서기』나 『신창성씨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서기에는 “신의 나라 서쪽에 강수가 있는데 근원은 곡나철산에서 나오고 있다. 그 먼 곳은 7일을 가도 이르지 못한다. 마땅히 물을 마시면 곧 이 산철을 채취할 수 있으므로 길이 성조에 받치겠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일까. 지리산의 뱀사골과 운봉고원의 계곡에는 철이 많아서인지, 유독 붉게 물든 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어김없이 철을 생산했던 제철 유적을 찾을 수가 있다. 기문국이 남원 운봉고원에서 처음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82년 남원 월산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에서였다. 이 조사에서는 고분의 조영 주체가 가야로 밝혀지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 까닭에 남원 월산리 고분군은 백두대간 운봉 고원에 기반을 둔 가야 세력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역사적인 장소가 됐다. 이는 그동안 지배층의 고분에서 출토됐던 청동거울, 금동신발, 금귀걸이, 철제 자루 솥 등과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청자 계호, 수레바퀴 장식 토기, 나무 빗은 멀리는 중국·일본과 가까이는 아라가야 등 주변 국가와의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입증한다. 기문국의 위상이 높지 않았다면 쉽게 출토될 수 없는 부장품이라는 뜻이다.

월산리 고분군(위). 월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재 자루 솥과 월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청자 계호(아래).

월산리 고분군(위). 월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재 자루 솥과 월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청자 계호(아래).

고대에 철은 곧 국가의 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철을 생산하는 나라는 문물교류의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봉고원의 가야 기문국은 철을 기반으로 하는 강국이었음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티베트 고원으로 불리는 운봉고원에는 고분군, 제철유적, 산성, 봉수 등 200개가 넘는 남원 가야의 유적이 산재해있다. 인월면 유곡리와 아영면 두락리에 보존되고 있는 40 여기의 고분군 같은 경우 영남의 고분과는 달리 1500여 년 전 가야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잠들어 있던 운봉 가야의 실체가 최근 들어 남원 시민과 남원시청의 각고의 노력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2019년 청계리 고분 발굴모습. 호남지역에 가장 이른 시 기이며 규모가 가장 큰 가야 계고 총(좌). 청계리 고분에서 호남지역 최초로 출토된 수레바퀴 장식은 아라가야를 대표한 유물(우).

2019년 청계리 고분 발굴모습. 호남지역에 가장 이른 시 기이며 규모가 가장 큰 가야 계고 총(좌). 청계리 고분에서 호남지역 최초로 출토된 수레바퀴 장식은 아라가야를 대표한 유물(우).

문화재청이 지난 2018년 운봉고원에 산재한 고분 가운데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한 데 이어 남원, 김해, 합천, 함안, 고령, 창녕, 고성의 7개 지역의 사적으로 지정된 고분군을 2019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했다. 이를 넘어서 오는 2022년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남원 운봉 고원의 기문국이 철의 왕국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남원 가야의 발자취, 베일 벗은 운봉 기문국의 실체가 이제는 1500여 년이란 긴 시간 속에 더 이상 묻히지 않고 더욱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백두대간을 넘어 세계유산 콘텐츠로 부상해 활용, 보존되기 바란다.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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