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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장 속에서 꽃 피운 가족애 그린 조선 시대 소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4)

“절개와 끈질긴 의지로 사랑을 이루고 전장에 핀 가족애를 만나다. ”

조선 후기 1621년 조위한이 지은 고전소설 한문 필사본 최척전.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후기 1621년 조위한이 지은 고전소설 한문 필사본 최척전.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척전(崔陟傳)』은 1621년 조위한이 지은 한문소설이다. 남원에 사는 최척(崔陟)과 옥영(玉英)이라는 남녀 주인공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의 전란을 겪게 되는 내용이다. 전쟁이 가져다준 민중계층 삶의 황폐함, 남녀 간의 애정 문제, 가족의 이산과 재회 과정을 그려낸 역작이다.

이 소설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여 주인공 옥영의 적극적인 행동 때문이다. 정상사(鄭上舍)라는 선비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에 열중하던 최척을 몰래 지켜보던 옥영은 어느 날 글방에 홀로 있는 최척에게 마음을 담은 쪽지 한장을 창틈으로 전해주는데, 이 내용이 기가 막히다. 쪽지를 받아 본 최척도 그녀가 전한 내용 때문에 이내 마음이 요동친다. 내용인즉슨.

“매실이 다 떨어져 광주리 기울여 담았네.

나를 찾는 선비여, 어서 말씀하세요.”

최척이 살았다는 만복사지 동쪽을 바라본 전경. [사진 양심묵]

최척이 살았다는 만복사지 동쪽을 바라본 전경. [사진 양심묵]

이 내용은 대표적인 구혼가로 알려진 소남(召南)의 시이며, 『시경(詩經)』에 있는 ‘표유매(摽有梅)’의 마지막 구절이다. 여기서 떨어진 매실은 혼기를 놓친 자신을 비유한 것이고, 구혼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아낸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이야 마음에 든 상대가 있으면 남녀 구분 없이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조선 중기의 시대적 윤리관이나 이성관으로 본다면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마음에 둔 최척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한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을 옥영이라는 여자 주인공을 통해서 그려낸 것만 봐도 그렇고.

옥영은 본래 한양 숭례문 밖 청파동에 살다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난리를 피해 어머니 심 씨와 함께 남원으로 내려왔다. 옥영의 어머니는 평소 옥영을 부잣집에 시집 보내려고 생각했던 터라 가난한 최척을 사랑하는 딸의 결정을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옥영은 어머니를 설득하고 “부잣집으로 출가해 남편이 어질지 못해 일생을 그르친다면 어찌할 것이옵니까?”라며 충실한 최척에게 시집가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최척과 옥영은 정상사 선비의 도움으로 9월 보름날 혼인하기로 약속하고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유재란 최고의 격전지 남원읍성의 성곽. [사진 양심묵]

정유재란 최고의 격전지 남원읍성의 성곽. [사진 양심묵]

뜻하지 않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일본과 조선 그리고 중국의 정치적 현실이 크게 변하는 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최척과 옥영 역시 혼란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듯했으나 정유재란이 일어나게 된다. 정유재란 최고의 격전지 남원성 전투에서 민·관·군 1만여명이 순절하고 남원성이 함락되자 최척의 가족은 지리산 연곡(燕谷)으로 피했다. 그러나 왜군이 쳐들어와 옥영은 일본으로, 최척은 명나라로 끌려가게 되고 부모와 가족은 조선에 남게 된다.

이렇게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최척과 옥영은 안남(베트남)의 항구에서 최척의 퉁소 소리에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고, 명나라에서 살며 아들 몽선(夢仙)을 낳는다. 이후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으로 최척은 다시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포로로 잡힌 곳에서 헤어졌던 큰아들 몽석과 재회해 조선으로 돌아온다.

명나라에 남아 있던 옥영은 작은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돌아와 가족이 모두 상봉하여 단란하게 살아간다는 내용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진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한다. 또한 최척전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설정해 그 시대의 현실감을 더했다. 남원을 비롯해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를 아우르면서 당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 간의 대립을 묘사했으며, 중세의 절대적 재앙인 전쟁에 의해 무너지는 민중의 삶과 갈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남원읍성 북문 발굴지 모습. [사진 양심묵]

남원읍성 북문 발굴지 모습. [사진 양심묵]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가족애가 점점 사라지는 요즘 같은 세태에, 오늘을 사는 우리가 꼭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최척이 살았다는 장소가 이곳 남원이 아닌가.

절개와 끈질긴 의지로 사랑을 이룬 것도 모자라, 전장 속에서도 꽃피운 가족애가 남원 땅에서 펼쳐졌다. 그런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소설 속에 그려진 그들의 애절한 이야기를 남원에서 만나보자.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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