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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신사임당·허난설헌에 꿀리지 않는 남원의 여성 작가

중앙일보

입력 2020.11.25 13:00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5)

공경하고 순종함이 아내의 도리이니 이 몸 다하도록 당신 뜻 어기지 않겠어요.

삼강오륜은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 부부유별은 서로를 존경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학창시절 배웠던 이 부부유별을 새삼스럽게 꺼낸 것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 부인인 삼의당 김 씨와 남편인 담락당 하립 부부의 사랑과 존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서다.『삼의당김부인유고집』은 조선 시대 후기의 삼의당 김씨 부인이 쓴 한시 시문집이다.

1932년 발행된 삼의당고(남원문화원 소장). [사진 양심묵]

1932년 발행된 삼의당고(남원문화원 소장). [사진 양심묵]

“열여덟 살 동갑내기인 선남과 선녀,
동방화촉 밝히는 좋은 인연이네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한마을에 살았으니,
이 밤의 우리 만남이 어찌 우연이겠나요.”

『삼의당김부인유고집』에 수록된 이 한시는 열여덟 살 김 씨 처자와 하립이 혼인하던 날 밤에 담락당이 읊은 시로, 두 사람은 같은 해 같은 달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동갑내기로 결혼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조선 영조 때 남원 교룡산 자락 서봉방에서 태어났다.

삼의당 김 씨와 담락당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서봉방(남원시 향교동 유천마을 전경)(좌). 1991년 남원문화원이 교룡산 아래에 건립한 김삼의당 시비(侍婢)(우). [사진 양심묵]

삼의당 김 씨와 담락당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서봉방(남원시 향교동 유천마을 전경)(좌). 1991년 남원문화원이 교룡산 아래에 건립한 김삼의당 시비(侍婢)(우). [사진 양심묵]

하립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인 하경천(河經天)의 아들로 시문에 뛰어났고, 김 씨 부인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 김인혁(金仁赫)의 딸로 태어나 글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두 집안은 몰락한 양반가로 가난을 면치 못했다. 가난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이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특별하였다. 남편이 과거(科擧) 시험공부를 위해 한양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신혼의 행복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가 주고받은 시와 편지로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고, 존경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를 감동하게 했다.

담락당 하립이 김 씨 부인과 결혼하고 나서 방안의 벽에 그림과 글씨를 잔뜩 붙여놓았고, 마당에는 여러 가지 꽃들을 심고, 방문 앞에 ‘삼의당(三宜堂)’이란 당호를 지어 걸어주었다고 하니, 부인을 존경하는 남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립은 집안을 일으키는 길이 바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과거시험 공부에 몰두했다. 이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는 삼의당 김씨 부인은 남편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뒷바라지를 한다. 부인은 정성을 쏟지만 번번이 과거시험에서 떨어지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교룡산 덕밀암에서 한양으로 유학을 보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다.

하립이 과거시험 공부를 위해 찾은 교룡산 덕밀암터(좌).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탑영제 호수 옆에 건립된 삼의당 김씨와 담락당 하립의 영정을 모신 명려각(우).

하립이 과거시험 공부를 위해 찾은 교룡산 덕밀암터(좌).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탑영제 호수 옆에 건립된 삼의당 김씨와 담락당 하립의 영정을 모신 명려각(우).

남편을 과거시험을 위해 유학길로 떠나보내고 홀로 보내는 밤, 어린 김 씨 부인은 모든 것이 낯설고 남편도 그리워 구구절절이 써내려간 시는 마치 깊은 밤에 촛농이 흘러내리듯 두 뺨을 눈물로 적신 그리움이 가득하다.

“인적 고요한 사창(紗窓)에 날은 저무는데,
문 닫힌 뜰에는 떨어진 꽃잎만 가득하네.
하룻밤 내내 님 그리는 고통을 알려거든,
비단이불 들춰서 눈물 자국을 살펴보세요.”

이 시는 ‘춘규사(春閨詞)’에 실린 18수 중 한수로 대부분 남편을 그리워하는 상사(想思)의 통한이 느껴진다. 어쩌면 여자로서 아니 낯 설은 시집살이하는 어린 아내로 인간 본연의 그리움을 이처럼 절절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다른 시에서는 남편을 원망하는 듯한 마음도 엿보이지만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역시 참기 힘든 삼의당 김 씨 부인의 생이별한 재회의 그리움일 것이다.

남편이 과거시험에 낙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를 보면 “여보 힘들지 않으신지요. 저는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머리카락을 잘라 양식을 싸 보냈고, 올봄에는 비녀를 팔아 여비를 보냅니다. 제 몸의 장신구가 다할지라도 당신께서 과거 볼 비용이야 어찌 궁핍하여지도록 하겠습니까?” 대목이 있다. 남편이 낙방해 서울에 머물러 있을 때 삼의당 김 씨 부인이 보낸 편지의 일부이지만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남편을 격려하는 마음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삼의당김부인유고집』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 시문집에는 99편 264수의 시와 22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이런 부부의 사랑과 존경은 1930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 그리고 조선 중기 천재 여성시인 허난설헌과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여성작가로서 조선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삼의당 김 씨와 담락당의 부부 사랑은 만남과 헤어짐이 자기중심적인 요즘 세대에게는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려울수록 더욱더 격려와 사랑과 존경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이들 부부의 역지사지 정신은 남원인의 문학적 위상과 가치가 얼마나 높고 깊으며 숭고한지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삼의당 김 씨 부인은 결혼 후 남원에서 15년간 살다가 결국 남편의 과거시험 낙방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33세에 남원을 떠나 진양하씨 선영이 있는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사해 농사일하면서도 타고난 문학적 재능으로 자연을 읊어내며 살다가 5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2020년 11월 27일(음력10월13일)은 삼의당 김 씨부인의 탄생 251주년이다. 지난해부터 김삼의당 탄생 기념사업을 시작하여 매년 ‘전국 삼의당 시·서·화 공모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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