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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흥부전' 속 지명이 곳곳에…남원 성산 마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2)

전북도청에서 공직생활을 마치고 고향 전북 남원으로 귀향했다. 남원은 ‘춘향가’와『춘향전』을 배경으로 판소리와 고전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랑의 도시이다. 춘향 이야기는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저항· 평등·개혁이라는 시대정신까지 담아내고 있다. 춘향 문화의 의미를 조명하고, 이몽룡과의 사랑이 얽힌 역사적 장소를 문화탐방 형식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박첨지 흥부 고유제를 지냈다는 망제단(좌). 발복지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에 있는 박첨지 흥부의 선덕비와 묘(우). [사진 양심묵]

박첨지 흥부 고유제를 지냈다는 망제단(좌). 발복지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에 있는 박첨지 흥부의 선덕비와 묘(우). [사진 양심묵]

흥부는 재물에 욕심이 많고 심술궂은 형 놀부에 비해 착한 성품으로 새끼 제비의 다리를 정성껏 치료해줬고, 이듬해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로 부자가 된 흥부의 이야기를 우리는 유년시절에 자주 접했다. 그런 흥부와 놀부 이야기가 소설 속 인물, 가상의 인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실존했던 증거가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한 것을 권하고 악한 것을 징계한다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 교훈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고전소설 『흥부전』은 남원 인월면과 아영면을 배경으로 쓰인 것이다. 『흥부전』은 흥부와 놀부의 탄생지와 흥부의 발복지(發福地)로 나뉜다. 남원 인월면 성산마을은  흥부와 놀부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인데, 『흥부전』과 내용이 유사한 ‘박첨지의 설화’가 유래했다.

흥부가 팠다는 흥부참샘(좌). 마을입구 흥부마을 발복지 표지석(우).

흥부가 팠다는 흥부참샘(좌). 마을입구 흥부마을 발복지 표지석(우).

이를 입증하듯, 성산 마을 건너편 골짜기에는 흥부가 놀부에게서 쫓겨나 짚신을 털며 아픈 다리를 움켜쥐고 신세를 한탄했다는 ‘신털 바위’, 산신제나 기원제를 지냈던 산제 바우까지 가지 못할 때 절을 하였다는 ‘독배 바위’, 제비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다리 ‘연상교’와 ‘박첨지 텃밭’, ‘타작마당’, ‘서당터’, ‘주막거리’ 등이 있다.

흥부의 발복지인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은 또 어떠한가.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데,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해 부자가 된 발복지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전, 선덕의 베풂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흥부의 실존인물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는 박춘보(朴春甫) 묘가 있다.

흥부 부부 박타는 조형물(좌). 흥부 묘에서 갖는 터울림 행사(우).

흥부 부부 박타는 조형물(좌). 흥부 묘에서 갖는 터울림 행사(우).

게다가 이 마을엔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노디막거리’, 허기져 쓰러진 흥부를 구환한 사람들에게 부자가 된 뒤 주었다는 ‘흰죽배미’,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가다 쉬어갔다는 ‘화초장 바위’와 ‘망제단’ 등 옛 지명도 남아있다.

특히 흥부가 한 스님의 점지로 집을 짓고 살며 팠다는 ‘흥부참샘’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 청정 약수로 소문이 나 있어 흥부 제사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한다. 오직 이 샘물을 떠다가 사용한다고 할 정도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현재 흥부 부부가 박을 타는 형상과 흥부 마을 발복지라는 표지석이 설치돼있으며, 흥부 생가도 조성돼 있다.

남원시는 지난해 판소리 ‘흥부가와 고전소설 『흥부전』발원지의 인문학적 정체성을 다지기 위해 조선 후기 흥부출생지인 인월면과 발복지인 아영면을 연결하는 ‘흥부대박길’까지 조성했다.

흥부대박길은 고난길과 희망길, 고진감래길 등 3개 구간 14㎞ 길이로 조성됐으며, 각 구간에는 흥부 인생의 희로애락이 상징적으로 표현돼있다. 이렇게 남원에는 흥부·놀부와 관련한 장소가 산재해 있다.

흥부제를 앞두고 흥부 묘에서 지내는 고유제(좌). 출생지 인월면 성산마을에 있는 박첨지 흥부의 묘(우).

흥부제를 앞두고 흥부 묘에서 지내는 고유제(좌). 출생지 인월면 성산마을에 있는 박첨지 흥부의 묘(우).

음력 9월 9일은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는 날로, 남원시에서는 이날을 기해 매년 흥부제를 개최하고 있다.

『흥부전』에는 “형제는 오륜의 하나요, 한 몸을 쪼갠 것이다. 그러므로 부귀와 화복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형제간 재산 다툼이 잦아져, 우애가 사라진 지 오래인 요즘 흥부와 놀부의 흔적을 통해 형제 우애를 다지고, 나눔과 보은의 정신을 되뇌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흥부제는 개최되지 않고 고유제만 올린다. 흥부와 놀부의 사랑 이야기는 매년 축제에서 부활하는 흥부를 통해 타인을 용서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덕을 쌓는 삶의 중요성을 배운다.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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