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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지리산 최고의 경치와 역사 공존하는 힐링 계곡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심묵의 남원 사랑 이야기(9)

지리산 제일의 경치를 자랑하는 구곡 문화의 결정체 용호구곡(龍湖九曲). 만복이 모이는 곳이라고 이름 붙여진 지리산 만복대에서 발원한 쪽빛 옥류수가 흘러내려 절경을 이루는 구룡계곡은 남원 사람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휴식을 주는 힐링 코스로 유명하다. 구룡계곡의 가장 큰 자랑은 기암절벽과 반석을 휘감아 도는 맑은 물과 물길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자리 잡은 소(沼)다.

자동차를 타고 남원 시내에서 지리산 둘레길 1코스가 시작되는 주천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멀리 만복대와 지리산의 준령이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이르는데, 그곳에 지리산의 첫 번째 물길인 구룡계곡이 있다.

구룡계곡은 9개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우리는 이곳을 용호구곡이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이야기까지 품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계곡의 첫 번째 관문 제1곡은 송력동(松瀝洞)을 지나 좌측으로 조선 후기 명필가로 알려진 창암 이삼만 선생이 쓴 ‘용호석문(龍湖石門)’ 과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라 쓴 바위 글씨를 만나게 된다.

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로 알려진 용호석문 바위글씨(좌). 방장제일동천 바위글씨(우). [사진 양심묵]

창암 이삼만 선생의 글씨로 알려진 용호석문 바위글씨(좌). 방장제일동천 바위글씨(우). [사진 양심묵]

방장은 지리산의 별칭이며 제일 동천은 제일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아름다운 선경을 이르는데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용호구곡 중 제2곡 옥룡추(玉龍湫)는 또 어떤가. 고전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이 묘가 바로 여기에 있다. 136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만고 열녀 성춘향의 묘가 1966년 ‘성옥녀지묘’라는 지석이 발견됨에 따라 만들어진 묘다.

다시 계단을 내려오면 육모정과 건너편에 용호정이 있다. 이 두 정자는 1572년에 설립돼 이 지역에 450여 년 동안 내려오는 원동 향약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운봉 현감으로 있던 박광옥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가져온 여대립과 주희의 초상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의 딸이 이곳 풍천 노씨 집안으로 시집오며 초상을 가져와 벽에 걸어두고 자녀와 시댁 조카들이 학문 정진의 표상으로 삼다가 별도로 사당을 지어 처음에는 ‘무이(武夷)’라 하다 ‘용호(龍湖)’로 바꾸어 불렀고 영귀정(詠歸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향촌 향약의 강신 장소가 되었다.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본래의 건물들은 수해로 떠내려가고 육모정과 용호정 만이 다시 세워져 있다.

춘향묘(좌). 용호정(우).

춘향묘(좌). 용호정(우).

그런가 하면 용소 위 너럭바위는 100명의 인원이 족히 앉아 놀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1960년대 춘향제 명창대회가 바로 이곳에서 열린, 곧 많은 명창의 자리였으며, 물 건너편은 소리꾼의 무대였다고 한다.

또 양반 출신 판소리 명창 권삼득은 용호구곡의 폭포 소리와 싸우며 소리 연습에 매진해 득음에 이르렀고, 가뭄이 들 때면 아랫마을 아녀자들이 솥뚜껑을 너럭바위에 비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육모정(좌). 한때 춘향제 명창대회를 개최했던 너럭바위(우).

육모정(좌). 한때 춘향제 명창대회를 개최했던 너럭바위(우).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용호서원(龍湖書院)이 있다. 용호서원은 1927년 원동향약(源洞鄕約)에 소속된 유림의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곳으로 향후 주변의 학동을 가르치는 서원으로 발전했다.

발걸음을 옮겨 제3곡 학서암(鶴捿岩)을 지나 삼곡교 좌측 ‘한국의 명수 구룡계곡’ 표지석 아래 계단을 내려가면 3.1km의 심산유곡으로 들어가게 된다. 깎아지를 듯한 바위와 울창한 송림, 물이 만들어 낸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이 사는 선경에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곳은 그야말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인 곳이다.

소 먹이통을 닮은 구시소, 곡식을 이는 챙이 모양의 챙이소가 모여 있는 제4곡 서암(瑞岩)은 스님이 꿇어앉아 독경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용호서원(좌). 용호구곡 중 제4곡 서암 아래 챙이소(우).

용호서원(좌). 용호구곡 중 제4곡 서암 아래 챙이소(우).

제5곡 유선대(遊仙臺)는 옛 신선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하는데 인간의 눈을 피해 병풍을 치고 놀았다고 해 은병선으로도 부르는 곳이다.

제6곡 지주대(砥柱臺)는 바위가 직벽을 이루고 있고 두 갈래의 물이 합쳐지는 삼각점으로 신선의 놀이터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제7곡 비포동(飛瀑洞)은 서쪽 우뚝 솟은 반월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데,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모습은 비가 온 뒤에만 만날 수 있는 절경이다.

제8곡 경천벽(敬天壁)은 석문추(石門墜)라고도 불리는데, 물이 많으면 갈 수 없지만, 갈수기에 들어가면 두 개의 큰 바위가 마치 대문처럼 맞대고 있다.

여기서 제9곡으로 가는 칼날 능선은 그동안 걷던 길과는 다른 경사진 구간이지만 정상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 신선 세계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산수경에 빠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제9곡 교룡담(交龍潭)은 과히 용호구곡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수만 년 물에 깎인 바위와 소의 옥색의 푸른 물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용이 승천할 것 같이 눈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주변 바위에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 교룡담(交龍潭), 구룡대(九龍臺) 글씨가 선명하다.

비가 내려야만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제7곡 비폭동(좌). 두 개의 소에 각각 한 마리씩 용이 내려와 놀았다는 제9곡 교룡담(우).

비가 내려야만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제7곡 비폭동(좌). 두 개의 소에 각각 한 마리씩 용이 내려와 놀았다는 제9곡 교룡담(우).

그 옛날, 아홉 마리 용이 사월 초파일에 내려와 아홉 개의 소에서 노닐다가 다시 하늘로 승천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구룡계곡의 용호구곡은 주자가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의 아홉 굽이 경치를 시로 노래한 무의도가(武夷櫂歌)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구곡문화(九曲文化)이며 남원이 품은 자연유산이다. 그런 만큼 나는 남원의 트레킹 코스로 추천하라면 주저 없이 구룡계곡을 추천하고 싶다.

남원 8경 중 1경으로 꼽을 정도로 풍경이 뛰어난 곳이면서 다양한 문화를 머금고 있는 것은 물론,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힐링 장소로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번뇌하는 일상에 지쳤거나 또 코로나 19로 인해 우울감이 든다면 근간에 구룡계곡을 한번 다녀가 보는 것이 어떨지.

남원시체육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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