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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구개열 무료시술 박병윤 연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지는 병인 구순구개열(일명 언청이)을 전공하는 의사들의 지침서는 '크레프트 크라프트(CLEFT CLAFT)'라는 책이다.

이 책을 쓴 랄프 밀라드 주니어 박사는 한국전쟁 때 군의관으로 한국을 찾아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그는 1950년대 중반 미국으로 돌아간 뒤 '로테이션&어드벤스먼트 테크닉'이라는 구순구개열 수술방법을 개발해 세계 성형학회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이 수술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환자가 많아 입술갈림증 치료의 메카라고 불린다. 남북한을 합쳐 7천만명에 이르는 인구 중 10만명 가량이 환자로 추산된다.

연세대 의대 성형외과 과장인 박병윤(朴炳胤.57)교수는 의사생활 31년 동안 언청이 수술만 2천5백여회를 했다. 이중 무료시술은 헤아릴 수 없다.

"입술갈림증에 관심을 가진 것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 후원으로 '언청이 퇴치사업'이 벌어졌는데 레지던트였던 저는 휴가 때마다 교수님을 모시고 전국을 돌며 무료시술을 했죠. 당시 산촌과 어촌의 환자들은 돈을 내고 수술받을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환자들이 방방곡곡에 있는데 중도에 그만둘 수 없어 10년간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성형외과의 다른 분야도 많은데 왜 굳이 구순구개열을 전공했을까 궁금했다.

"돈벌이에는 별로 재주가 없어요. 관심도 없고요. 평생 음지에서 살아야 했을 환자들이 저의 도움으로 햇볕을 본다면 그게 보람이지요."

그는 10여년 전부터 홀트아동복지회 등 복지시설 아동 중 구순구개열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다. 朴교수는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현지 병원으로부터 '한국에서 수술을 너무 잘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편지를 보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朴교수는 수술할 때 클래식 음악을 트는 것으로 유명하다. 환자는 물론 자신과 간호사의 마음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며 그래야 수술부위가 예뻐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0월 열흘간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왔다.

99년부터 5년째 해오던 무료 수술을 위해서다. "하루에 12시간 동안 수술합니다. 수술기구는 물론 실.바늘.거즈까지 직접 들고 가지요. 몇년 전 수술한 환자와 부모들이 토속품을 들고 옵니다. 고맙다며 제 앞에서 우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는 "수천만원짜리 수술기구를 매년 세브란스병원의 허락을 받아 갖고 출국한 뒤 다시 갖고 온다"면서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후원해 줄 독지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꿈이 있다. 그는 정년퇴임한 후 구순구개열 연구소를 차릴 예정이다. 그리고 이 연구소 직원들은 모두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은 아이들로 채우고 싶다.

"곱게 잘 자란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외모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취직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 우리 사회도 성숙했습니다. 이런 편견은 없어져야죠." 그의 연구실은 온통 어린 환자들이 보낸 감사 카드로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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