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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가운 입고 줄섰다…美시애틀 1600명 한밤 백신접종 소동

중앙일보

입력

“옷 입을 시간도 없어서 목욕 가운만 걸치고 나왔어요”

지난 29일(현지시간) 새벽 미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병원 앞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AP=연합뉴스]

지난 29일(현지시간) 새벽 미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병원 앞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AP=연합뉴스]

지난 29일(현지시간) 자정,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거주하는 한 부부는 잠자리에 들기 전 트위터를 켰다가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그 시각 인근 지정 병원에 가면 누구나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뉴스였다. 병원 측은 "늦은 밤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경험은 흔치 않다"며 주민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밤 12시 시애틀의 한 병원 앞으로 주민 수천 명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고 몰려들었다. 급한 마음에 슬리퍼에 잠옷 차림, 목욕 가운만 걸치고 나온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NYT는 그 모습을 '열광적인 한밤중 백신 접종 소동'이라고 소개했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타이슨 그리어(77)가 29일 새벽 UW메디컬센터에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애틀에 거주하는 타이슨 그리어(77)가 29일 새벽 UW메디컬센터에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소동은 이날 오후 5시 시애틀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의 초저온 냉동고가 고장 나면서 시작됐다. 냉동고 안에는 미 제약사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1600회분이 보관돼 있었다. 영하 20도를 유지해야 하는 모더나 백신은 실온에 노출되면 12시간 안에 사용해야 한다.

이 백신은 의료진과 소방 공무원에게 제공될 예정이었지만, 긴급히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당초 병원은 65세 노인 등 우선 접종 대상자에게만 연락을 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밤 11시 접종대상자를 모든 주민으로 확대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서 있는 시애틀 주민들. [AFP=뉴스1]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서 있는 시애틀 주민들. [AFP=뉴스1]

인근 병원이 가세해 접종소를 늘리고 홍보를 도왔다. 병원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12시간 안에 1600명에게 모더나 백신을 투여하지 못하면 모두 버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공지 30분 만에 예약이 완료됐고, 병원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새벽 2시 휠체어를 타고 온 할머니도 있었다. 덕분에 접종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새벽 3시 30분 물량을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유통기한을 1시간 30분 남겨둔 시간이었다. 시애틀 병원 관계자는 "백신 유통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모두 접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에서 코로나19 운송 중 폭설로 고속도로에 갇힌 의료진이 인근 차량 운전자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에서 코로나19 운송 중 폭설로 고속도로에 갇힌 의료진이 인근 차량 운전자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백신의 초저온 보관 특징으로 곳곳에서 비슷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리건주에서는 백신 수송 차량이 폭설로 고속도로 위에 갇히자 유통기한이 임박한 백신을 도로 위 차량 운전자들에게 접종하는 일도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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