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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논란 원전 파일엔 한수원 부사장 이력서까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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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1호기 감사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파일 목록이 공개되며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주려고 한 정황이 담긴 문건 파일이 나와서만이 아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해 관련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우리 정권에 사찰 DNA는 없다”는 문재인 정권에서 사찰 논란이 불거지는 배경이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등의 동향보고서 10여 건을 작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에너지전환 관련 지역 및 이해관계자 동향 ▶원자력정책연대 출범 및 동향 보고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 동향 ▶에너지전환 관련 단체 동향 보고 등이다.

월성원전 삭제 파일 목록에는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시민단체, 한수원 노조 동향 문건도 들어있다. [일람표 캡처]

월성원전 삭제 파일 목록에는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시민단체, 한수원 노조 동향 문건도 들어있다. [일람표 캡처]

특히 탈원전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높인 시민단체 ‘원전수출 국민행동’의 경우 산업부는 출범 전부터 이 단체와 관련한 동향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시민단체가 작성한 '광화문 행사 신청서'까지 삭제된 파일에서 나왔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원전수출 국민행동 부본부장)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부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 단체 이름을 ‘원전수출’로 정하는 등 우리 스스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며 “무조건 반대가 아닌 발전적인 대안을 논의하자는 것인데, 우리의 발언ㆍ행동이 어찌 보면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상당히 두렵고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던 한국수력원자력 노조의 움직임도 관찰 대상이었다. ‘한수원 신임 사장 관련 노조 동향’이라는 제목의 삭제 파일은 사장 임명을 한 달 앞둔 2018년 3월 9일 작성됐다. ▶한수원 노조 탈원전 인사 고소 동향 ▶한수원 노조 관련 동향 보고 등의 파일도 나왔다. 노희철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본의 아니게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한수원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삭제한 파일 목록 530개 중 ‘한수원’ 관련 파일이 63개로 10분의 1을 넘는다. 이 가운데엔 ‘한수원 부사장(김OO) 이력서’ 같은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이밖에 다른 원전 전문가의 이력서를 만들었다 삭제하기도 했다.

김병기 원자력국민연대 공동의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면서 “만일 사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엄정하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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