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이 때려죽여도 우발적이면 집유…복지부 "형량 높여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동학대. [중앙포토]

아동학대. [중앙포토]

2019년 5월, 3살 지원(가명)이는 아빠 손에 숨졌다. 지원이 아빠 A(30)씨는 2019년 10월 대구 달성군 자신의 집에서 지원이와 형(5)이 싸우자 훈육하던 중 지원이를 때려 숨지게 했다. A씨는 아이의 뺨과 가슴 부위 등을 때린 혐의(아동학대 치사)로 재판에 넘겨졌다. 훈육 도중 지원이가 “형과 계속 싸우겠다”고 대답하자 화가 났다고 한다. 아빠에게 맞아 벽과 책장에 머리를 부딪친 아이는 경막하출혈에 의한 뇌부종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이틀 만에 숨졌다. A씨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아이가 죽었지만 재판부는 “계획적, 적극적 학대의 의도로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검사와 피고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수위가 낮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아동학대 범죄 양형기준을 개선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21일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 김영란 위원장을 만나 아동학대 관련 범죄의 양형기준을 개선해달라는 내용의 제안서를 전달했다.

제안서에는 법무부와 경찰청 등 관계 부처와 법률 전문가, 아동 분야 교수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아동학대 행위자 처벌강화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한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난 아동학대 치사 사건 15건 가운데 A씨처럼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는 2건이다. 징역 1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를 받은 사건은 1건에 불과했다. 또 최근 3년간 아동학대 범죄 사건 2391건 중 집행유예 선고가 1069건(44.7%)으로, 실형 선고 382건(16%)의 3배 수준이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아동학대치사죄의 양형 기준은 징역 4~7년이다. 동종 전과나 고의성, 범행의 잔혹성 등을 따져 최대 10년, 성폭력 등 추가 범죄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면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복지부는 아동학대 범죄의 유형이 다양한데도 아동학대치사나 중상해, 아동복지법상 일부 금지 행위에 대해서만 양형 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호자에 의한 형법상 상해 등 다른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서도 양형 기준을 마련하거나 별도의 ‘아동학대 범죄군’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신체적ㆍ정서적 학대, 유기ㆍ방임 등 아동복지법상 일부 금지 행위에 대한 양형 기준은 마련돼 있지만 ‘특정 가중요소’가 적용되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대 행위자가 보호자거나 6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을 상대로 한 범행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를 아동복지법상 신체ㆍ정서적 학대 등에도 적용해달라고 제안했다.

복지부는 아동학대 범죄를 다른 범죄와 다르게 판단해달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를 뜻하는 ‘처벌 불원’ 등의 형량 감경 사유가 아동학대 범죄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다른 범죄에서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가 감경 요소로 고려되지만, 아동학대 범죄에서는 피해 아동이 학대 행위자나 친족에게 이를 강요받을 수 있어서다. 또 아동학대 범죄에서는 집행유예 사유를 엄격히 적용해달라는 제안도 담겼다.

복지부는 “아동학대 범죄에서는 보호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 가정에 복귀한 뒤 재학대를 저지를 우려가 큰 만큼 사회 복지제도로도 해결되지 않는 ‘극심한 곤경’에 한해서만 검토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권덕철 장관은 “아동학대 범죄의 심각성에 준하는 처벌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사법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