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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 설거지, 배달…6주만에 문 연 필라테스 강사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필라테스는 2~3명 소규모로 마스크를 쓰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인데 금지된 게 의아했다. 회사에선 여전히 옆자리에 다닥다닥 붙어서 마스크도 잘 안 쓰고 일하지 않나. 그래도 6주 만에 운동하니 너무 개운하다."

지난 18일 오후 9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한 필라테스 강습소에서 이날 마지막 수업을 마친 직장인 김모(32)씨의 얘기다. 김씨는 친구와 함께 필라테스 수업에 참석했다. 이 시각 약 59㎡(18평)의 강습소엔 회원 3명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6주 만에 문 연 필라테스 강습소 보일러가 얼었다. 사진 고윤지씨 제공

6주 만에 문 연 필라테스 강습소 보일러가 얼었다. 사진 고윤지씨 제공

6주 만에 문 연 필라테스 "부둥켜안고 눈물"  

약 6주 만에 문을 연 필라테스 강습소. 한파 탓에 보일러는 얼어있었다. 한 달 넘게 작동하지 않아서다. 오랜만에 출근한 강사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안도와 이러다 또 일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눈물로 쏟았다고 한다.

지난 18일 인터뷰에 응한 필라테스 강사 고윤지씨와 김서나씨. 여성국 기자

지난 18일 인터뷰에 응한 필라테스 강사 고윤지씨와 김서나씨. 여성국 기자

강습소를 운영하는 고윤지(31)씨는 이날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에게 핫팩을 선물로 나눠줬다. 환불을 요구하지 않고 기다려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고씨는 2017년 1월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필라테스 강습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필라테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목받고 회원이 늘자 지난해 11월 같은 구의 남가좌동에 2호점을 열었다. 올해 이곳에 약 2000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생긴 것도 이유였다. 2호점을 열었다는 기쁨도 잠시. 지난해 12월 8일 0시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상향 조정으로 실내체육시설 집합 금지명령이 내려지며 2호점은 오픈 한 달 만에 문을 닫았다. 당초 약 3주가량이었던 금지 기간은 6주로 연장됐다.

강사들, 설거지에 배달 알바도 

고씨는 2호점을 열면서 필라테스 기구 값 1500만원, 보증금 2000만원 등 총 6000만원을 투자했다. 이 중 2000만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1호점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월세가 620만원이었다. 2호점 월세 130만원과 관리비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약 800만원이 고정비로 나간다. 금지 기간이 늘어나자 불안과 부담은 커졌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는 "금지 기간이 길어지니 돈을 벌어야겠더라"라며 "배달 알바도 해봤고, 가족이 일하는 '함바' 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했다"고 말했다.

'함바'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고윤지씨. 사진 고윤지씨 제공

'함바'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고윤지씨. 사진 고윤지씨 제공

회당 수업료 6만~7만원의 절반가량을 수입으로 얻는 동료 강사들도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이들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거나, 배달 일을 했다. 물류센터에서 허리를 펴고 하는 작업을 배정받으면 그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동료 강사 김서나(31)씨는 물리치료사 면허증을 활용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김씨는 하루 8시간 동네 의원에서 근무하면 일당 10만원을, 요양병원에선 일당 14만원을 받았다. 요양병원에서 일할 땐 주 2회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장갑과 마스크, 얼굴 가리개를 끼고 일하는 건 필수였다. 코로나 감염 위험도 생계 앞에선 감수해야 했다.
"협회 홈페이지에 구인 광고가 뜬다. 눈에 불을 켜고 구인공고가 뜨자마자 전화를 해야 간신히 구할 정도였다. 구인 공고가 뜨고 5분 지나서 연락하면 이미 마감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씨는 '회원들이 환불 요구를 하면 어쩌나'란 불안감에 설거지 알바를 하면서도 회원들에게 운동 영상을 찍어 보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강습소에서 환불을 요청한 회원은 2명뿐이라고 한다. 고씨는 "운동 영상을 보내면 '힘내라' 해주시고 기프티콘을 보낸 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작은 위로에도 눈물이 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회원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사진 고윤지씨 제공

회원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사진 고윤지씨 제공

"카페·네일아트는 되고 필라테스는 왜 금지하나" 

이들은 과거에도 1~2주 집합금지 명령에 따라 강습소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리 두기가 끝나기로 예정된 날을 2~3일 앞두고 금지 기간은 연장됐다. 고씨는 "문을 닫고 망하면 어쩌나, 대출과 월세는 어쩌나 매일 고민이었다"고 했다. 이어 "어느 날 강습소 근처를 지나가는데 바로 아래층(2층)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더라. 카페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해도 9시까지 영업을 할 수 있지 않나. 그걸 보니 불 꺼진 강습소가 더 처량해 보여 또 눈물을 쏟았다"며 울먹였다.

지난 18일 영업을 마치고 필라테스 기구를 소독하는 강사들. 여성국 기자

지난 18일 영업을 마치고 필라테스 기구를 소독하는 강사들. 여성국 기자

고씨는 지난 6일 필라테스와 휘트니스 업계의 시위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오는 25일엔 집합금지업종을 대상으로 한 지원 대출을 받을 예정이다. 고씨는 일관적인 방역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둘이 아니면 둘, 셋이 모여서 마스크 끼고 하는 필라테스 수업은 안 되고 마스크 벗는 속눈썹이나 손톱 아트숍은 영업이 가능한 게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 만드는 분 중 필라테스를 하는 분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식당에서 밥 먹는 것보다 필라테스가 안전하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모르면 전문가나 업계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제발 들어보고 결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6주만에 문을 연 강습소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김서나씨. 여성국 기자

약 6주만에 문을 연 강습소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김서나씨. 여성국 기자

'새해 대목' 놓쳤지만 새 출발 결심 

인터뷰를 마치며 고씨와 김씨는 올해는 '새해 대목'을 놓쳤다고 했다. '새해 대목'은 매년 1월 새해 결심을 하며 운동을 등록하는 회원이 늘어나는 것인데 올해는 영업을 전혀 하지 못해서다. "1월 회원 모집을 전혀 못 했으니 새로 모집을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게 막막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려 한다." 내일을 위해 강습소 청소와 소독을 마친 고씨가 말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6주간 그들의 달력은 멈춰있었던 셈이다. 이들의 새해는 어제(18일)부터 시작됐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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