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작은 영웅들·끝
“작년에 취직한 딸에게 김치찌개 한번 끓여주고 싶어요.”
남양주 현대병원 김세재 차장 #코로나 환자·병동 관리 도맡아 #80명 치료에도 직원감염 0 뿌듯 #“간호사 1년차 딸과 여행 갔으면”
경기도 남양주시 현대병원 감염관리 담당 간호사 김세재(55) 차장의 새해 소망이다. 김 차장은 “가족과 맛있게 식사하고, 하루라도 실컷 자고 싶다”고 말했다.
20년이 넘은 베테랑 간호사에게 2020년은 절대 잊지 못할 한 해다. 1년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전선에 있었다. 병원 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동선 관리, 환자 발열 감시, 외래 환자나 의심 증상 환자가 있는 안심병동 관리, 새로운 환자 받고 기존 환자 전원 보내기…. 이 모든 일이 김 차장 몫이다.
김 차장은 “1년 전 1번 환자가 나왔을 때 한국 의료체계가 잘 갖춰져 있으니 금방 잡힐 줄 알았는데 지난해 2~3월 대구 1차 대유행을 보고는 ‘곧 전국으로 퍼지겠구나’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때 이미 마음의 준비에 들어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말 코로나19 관련 격리자를 받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당시 몽골에서 간경화 치료를 하러 입국한 환자가 확진됐는데, 그 가족이 격리할 데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때는 감염 관리 시설이 없어 병동(32개 병상)을 통째로 비워 격리자 5명을 받았다.
직원과 의료진 모두 코로나19가 생소하던 때였다. 김 차장은 홀로 모든 직원의 교육을 담당해야 했다. 격리자 관리도 김 차장의 몫이었다. 병원 영양실에 식사를 모두 1인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 후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음식을 날랐다. 격리자 중 1명이 열이 38도까지 올랐을 땐 추가 확진인가 싶어 아찔했다고 한다. 다행히 기저질환(가슴 부위 염증)으로 인한 단순 발열이었고 격리자는 모두 2주 뒤 안전하게 몽골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1년 동안 김 차장의 퇴근 시간은 오후 10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 쉬기도 어려웠다. 오전 5시에 일어나 6시 30분에 출근하고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환자나 보호자, 격리자 등의 민원에 시달렸다. 김 차장은 “담배 피우러 간다는 환자를 말리다가 ‘네가 뭔데 난리냐’ 등 폭언을 들었을 땐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했다”며 “확진된 아내를 보러 유치원생 아들을 데리고 지방에서 올라온 보호자에게 면회가 안 된다고 설명할 땐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현대병원은 지난해 12월 17일 경기 북부 민간종합병원 가운데 첫 코로나19 거점 전담 병원이 됐다.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다른 병원에서 받기를 꺼려하는 중증 환자까지 마다치 않고 받았다. 그는 “8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단 1명의 직원도 감염되지 않았다”며 “대형 병원조차 직원 감염으로 문을 닫은 적이 있는데 감염 관리 책임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병원에서는 1등 간호사였지만 집에서는 늘 미안한 엄마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 차장은 연년생 딸·아들을 뒀다. 지난해 딸이 취업에 성공했지만 근사한 저녁 한 번 함께하지 못했다.
김 차장은 “딸이 간호사가 됐다. 1년 차에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온다”며 “딸과 함께 이전에 살았던 전남 완도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지만, 끝까지 건강하게 같이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