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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끼 다 집밥인데…” 파·계란·삼겹살 다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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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계란 한 판(30개 특란)이 4000원대였는데 닷새 만에 5980원이 됐다.” 지난 9일 이마트 서울 자양점에서 만난 박선미(41)씨의 말이다. 이날 박씨는 계란 코너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계란 한 판을 집었다. 그는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과 초등학생 자녀까지 세 식구다. 요즘 세 끼를 집에서 먹는데 (계란을) 안 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마트에 오는데 채소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덧붙였다. 주부 이모(62·구의동)씨는 “(예전에) 일주일치 장을 보면 대략 10만~15만원 들었는데 한 달 전부턴 18만원 정도 든다”고 전했다.

연초부터 ‘밥상 물가’ 비상 #작년 작황 부진에 집밥 소비 급증 #농·축·수산물값 1년 전보다 10% ↑ #사과는 53%, 양파는 63% 뛰어 #두부·통조림·음료수까지 줄인상

이날 이마트 자양점에서 제주산 양배추를 포기당 1980원에 특가 판매한다고 안내하자 순식간에 고객이 몰리기도 했다. 최근 양배추 값은 포기당 4000원대가 일반적이다. 한파로 출하량이 줄어 양배추나 시금치 가격은 30~40% 올랐다.

밥상 물가 얼마나 올랐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밥상 물가 얼마나 올랐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연초부터 밥상 물가가 들썩인다. 특히 닭고기나 계란 가격은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의 여파로 급등하고 있다. 일부 대형마트에선 계란 한 판(30개) 가격이 7000원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농·축·수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9.7% 뛰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5%)을 크게 웃돈다. 쌀(11.5%)·돼지고기(16.1%)·쇠고기(국산·10.7%) 가격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채소·과일 등 신선식품 가격도 10.0% 올랐다.

박씨는 “지난해 가을까지 채소 가격이 올랐다가 좀 내려가겠다 싶었는데 한파 탓인지 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40대 주부 황모씨는 “요즘 가격이 내려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며 “농산물은 물론 라면·과자류도 가격이 조금씩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동네 가게랑 대형마트에서 가격을 비교하면서 찬거리를 사고 있다”며 “채소랑 공산품은 대형마트가, 고기류는 동네(가게)가 싸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수산물과 과일은 지난해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작황이 부진했다. 사과의 소매 가격(지난 8일 기준)은 1년 전과 비교해 50% 이상 올랐고 양파 값도 같은 기간 60% 이상 상승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주요 식재료 중 1년 전보다 가격이 내려간 품목은 배추와 무 정도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밥’ 소비가 늘면서 돼지고기·쇠고기·계란 가격도 많이 올랐다. 노승민 이마트 돈육 바이어는 “지난해 돼지고기 재고가 상당히 많았는데 모두 소진됐다”며 “쇠고기도 전년 대비 10%가량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고 말했다.

국내 두부 시장 1위 업체인 풀무원은 이달 중 두부 가격을 10% 안팎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샘표식품은 오는 18일부터 꽁치·고등어 통조림 제품 네 종류를 평균 42% 인상한다. 코카콜라는 지난 1일부터 500mL 제품 가격을 100원, 1.5L 제품의 가격을 200원 올렸다. 동아오츠카는 포카리스웨트와 오로나민C 가격을 100~200원 인상했다.

코로나 봉쇄에 국제 식량값도 7개월째 상승

국제 시장에서도 식량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식량 가격 상승세가 전반적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애그플레이션’(농업+인플레이션)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세계 식량 가격지수(107.5)는 전달보다 2.2% 올랐다. FAO는 2014년과 2016년의 식량 가격 평균을 기준(100)으로 계산한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잠시 주춤했던 식량 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7개월 연속 올랐다. 지난해 12월 식량 가격 동향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육류(-11.5%)를 제외한 곡물(19.0%)·유지류(25.7%)·유제품(5.1%)·설탕(4.8%) 가격이 나란히 올랐다.

식량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코로나19의 영향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기가 어려워지자 농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력 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식량을 포함한 국제 화물의 운송료 부담도 커졌다. 벌크선 운임을 보여주는 발틱운임지수는 지난 8일 1606달러로 한 달 전보다 10.91% 올랐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극복한 중국이 최근 돼지 사육두수를 늘린 것도 사료용 옥수수·대두 등 곡물 가격 인상을 부채질했다.

기후변화가 농업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 농산물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진교 대외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자연재해 발생 빈도가 다섯 배 이상 늘었다”며 "기후변화가 앞으로 식량 수급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식량 가격 상승은 올해 하반기 국내 밥상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국제 농산물 가격 동향은 통상 6~9개월의 시차를 두고 식료품 가격 인상으로 연결된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부동산 가격은 넘사벽(넘어설 수 없는 벽)이고 먹고 입는 생필품도 매년 오르는 것 같다”며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백민정·김남준·이병준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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