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에이즈 '죽음의 단계'"

중앙일보

입력

450만명의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자 및 에이즈 환자를 보유, 세계 최악의 에이즈국으로 꼽히는 남아프리카는 에이즈로 숨지는 사람이 새로 감염되는 사람보다 많은 '죽음의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더반 에이즈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이 진단했다.

4일 BBC와 CNN 보도에 따르면 나탈대학의 에이즈 전문가 카라이샤 압둘 카림은 "남아프리카의 에이즈 사망률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으며 그것도 겨우 시작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이제 에이즈의 진면목을 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남아프리카의 HIV 감염 사례는 이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그렇다고 해서 매일 새로운 감염자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압둘 카림은 더반에 있는 킹 에드워드 병원의 입원환자 가운데 90%가 HIV 양성 반응자라고 강조했다.

에이즈 퇴치운동가들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에서는 날마다 600명 가량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있으며 많은 감염자들이 약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세가 악화되고 있어 사망률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더반에서 3일 개막된 에이즈 대책회의에서 운동가들은 정부가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 보급을 외면하고 있는데 대해 격렬히 항의했으며 시내에서도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벌였다.

남아공 최대의 에이즈퇴치운동 단체인 치료행동운동(TAC)은 정부가 모든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치료약 공급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데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해 회의는 개막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보건기구(WHO)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인 네비러파인 보급 문제는 이번 회의의 최대 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정부는 "이 약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비용"이라고 변명하면서도 이 약의 안전성이 확립될 때까지 보급을 보류해야 한다는 국가기관 의료통제위원회(MCC)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MCC는 네비러파인이 산모-태아간 감염을 절반 가량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독일 제조업체에게 앞으로 90일내에 약물의 안전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면서 국내 보급 중단을 위협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지지 속에 강력한 에이즈 퇴치 운동을 벌여온 TAC의 지도자 재키 아흐마트(41)는 모든 감염자들에게 이 약을 보급하기 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전국적인 보급계획이 마련될 때까지 약물 복용을 중단하겠다던 태도를 바꿔 이날부터 약을 먹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의 한 대변인은 "이 운동이 끝날 때까지 재키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가 정부의 부정적 태도와 오만의 희생자가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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