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임재준의 의학노트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코로나19에 가장 크게 영향받은 분야 중 하나가 교육이다.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수업이 대폭 늘어났고 시험까지 온라인으로 치러지기도 한다. 감독관 없이 진행되는 재택 온라인 시험은 필연적으로 부정행위에 대한 유혹을 키운다. 이미 우리나라 대학 몇 곳에서 집단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최근에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 수십 명이 미적분 시험에서 답안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막냇동생이며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던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도 학생 시절 저지른 부정행위 때문에 평생 곤욕을 치렀다.

감독관 없는 재택 온라인 시험 #필연적으로 부정행위 유혹 키워 #작은 점수 차를 다르게 평가하니 #부정의 유혹에 빠지는건 아닐까

1951년, 하버드 대학 1학년이던 케네디 의원은 친구에게 스페인어 시험을 대신 보게 했다가 들통나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는 2년 동안 군 복무를 한 후에야 다시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버지니아 법대에 지원했는데, 부정행위 전력 때문에 반대가 심해 교수 모두가 참여한 찬반 투표 끝에 겨우 입학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젊은 상원의원으로 맹활약하던 그가 198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현직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와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도 부정행위로 퇴학당했던 사실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물론 케네디 의원만 부정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사협회 소속 드위트 볼드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1991년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이들은 미국 31개 의대에 재학 중이던 2학년 학생 3975명에게 부정행위에 대한 설문을 보냈고, 이에 응한 2459명의 회신을 분석했다. 이들 중 무려 39%가 남의 답안을 베끼거나 먼저 시험을 치른 친구에게 문제를 물어보는 등의 부정행위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다만 스스로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4.7%의 학생들만이 그렇다고 인정했다. 물론 이 수치는 실제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의대생만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연구팀이 여러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발표한 적이 있는데,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인정한 비율은 의대생들에서 가장 낮았다.

사정이 있어 시험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한번 실수한 것일 수 있으니 그냥 너그럽게 봐주면 어떨까? 그렇지만 부정행위로 적발된 학생들의 상당수가 이전에 부정행위를 한 전력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한번 실수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더구나 잘못된 행동의 영향은 오래간다.

의학노트 1/8

의학노트 1/8

미국 UCSF 의대 맥신 파파다키스 교수팀은 혹시 의사가 된 후의 일탈이 의대생 시절에 보여준 모습과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팀은 우선 1970년 이후 미시간 의대, 토머스 제퍼슨 의대, UCSF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 중 1990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의사협회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235명을 확인했다. 징계사유 중 가장 흔한 것은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환자에게 위험을 초래한 경우였다. 그 외 범죄행위에 연루된 경우, 최소한의 적절한 진료도 하지 못한 경우, 보험회사에 부당하게 진료비용을 청구한 경우 등도 있었다.

파파다키스 교수팀은 이들 235명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된 후 징계받은 적이 없는 469명을 뽑아서 학부 성적, 의대 입학시험 점수, 유급 여부, 의대 성적, 의사시험 점수는 물론 각종 평가기술서와 학장 추천서 등을 세세히 검토하여 비교했다.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의사들의 의대 입학시험 점수가 다른 의사들보다 낮았고, 유급한 적도 더 많았지만, 가장 크게 차이가 난 것은 의대 재학 중의 행동이었다. 의대생 시절 부적절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의 비율이 징계 경력이 있는 의사들에서 세 배나 높았다. 특히 임상 실습에 무단으로 빠지거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려 여덟 배나 흔했다. 이렇게 간단한 연구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의학 학술지인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출판되었다는 것은 이 연구 결과의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부정행위는 그냥 웃어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아주 작은 점수 차이를 근거로 너무 다르게 평가하여 학생들을 부정행위의 유혹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시험 점수와 진짜 실력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