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예약' 했는데 가보니 칸막이…따질수도 없는 코로나 촌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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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강서구의 한식당을 찾은 직장인 강모(28)씨는 룸 예약을 했다가 칸막이만 세워둔 자리를 배정받았다. 강모(28)씨 제공

지난 5일 서울 강서구의 한식당을 찾은 직장인 강모(28)씨는 룸 예약을 했다가 칸막이만 세워둔 자리를 배정받았다. 강모(28)씨 제공

“룸이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거든요. 점심시간에 가보니까 한 뼘 정도 되는 테이블 사이에 칸막이만 덜렁 세워뒀더라고요.”

지난 5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식당을 찾은 직장인 강모(28)씨의 얘기다. 강 씨는 직장 동료와의 점심을 좀 더 안전하게 먹겠다는 생각에 식당 측에 독립된 공간인 방(룸)이 있는지를 문의했다. 식당 측은 룸 예약이 가능하다 했고, 강씨는 예약을 부탁했다. 하지만 찾아간 식당에서 안내받은 자리는 칸막이로 좁은 공간을 분리해 놓은 곳이었다. 강 씨는 “룸이 맞냐고 종업원에게 물어봤더니 '독립된 공간이나 마찬가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황당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식당 사정도 어렵다는 걸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식사했다”고 허탈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하면서 ‘룸 있는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일 코로나19 3차 대유행 확산세를 꺾기 위해 현행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더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그동안 수도권에서만 적용해왔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처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번 조처로 전국 식당에선 4명까지만 예약을 받을 수 있는데 사무실 밀집지역 인근 식당에선 점심시간마다 룸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적은 인원이 가더라도 개별적인 공간에서 식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식당 관계자는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 점심 시간대 손님이 전반적으로 줄었다”면서도 "룸을 따로 찾는 손님은 오히려 늘어 이틀 정도 예약이 차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거리두기를 위해 룸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강서구의 식당처럼 손님 유치를 위해 무리한 운영을 하는 식당도 늘고 있다. 직장인 정민진(31)씨도 강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정 씨는 “회사 근처 사람이 몰리는 식당에 가고 싶지않아 주로 배달을 이용하는데 부득이하게 외부에서 먹어야 할 때가 있다”며 “그때마다 룸 예약을 확인하고 가는데 종종 룸이 아닌 칸막이로 막힌 자리로 안내하며 사과하는 식당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회사가 몰려있는 지역에서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비수도권 2단계를 17일까지 2주간 연장했다. 기존 전국 단위 모임 '취소 권고' 수준을 '금지'로 방역 수위를 높인 것이다. 사진은 4일 오전 인천시 부평역 내 한 음식점. 뉴스1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비수도권 2단계를 17일까지 2주간 연장했다. 기존 전국 단위 모임 '취소 권고' 수준을 '금지'로 방역 수위를 높인 것이다. 사진은 4일 오전 인천시 부평역 내 한 음식점. 뉴스1

 방역 기준을 지키면서 운영하는 식당의 고민도 깊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 장사가 안되는 상황에서 룸이 없거나, 있어도 예약이 다 찼다고 하면 손님 발길이 끊겨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6년째 문을 열고 있는 한 중식당 관계자는 “예약 전화를 한 손님에게 방이 없어 홀 자리 예약을 권하면 전화를 끊는다”며“테이블 간 1m 거리두기 등 방역기준 지키고 있다 설명해도 불안해서 안 되겠다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손님 반응이 이러니 룸 예약 전화가 오면 식당 측이 일단 예약을 받고 칸막이 자리로 안내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룸 방역, 최선의 선택지 아냐"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1.5단계로 격상된 11월 19일 서울 동작구청 관계자가 대방동 뷔페 및 한식당에서 출입자 명부관리, 테이블 간 1m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 이행여부 지도점검을 하고 있다. 동작구청 제공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1.5단계로 격상된 11월 19일 서울 동작구청 관계자가 대방동 뷔페 및 한식당에서 출입자 명부관리, 테이블 간 1m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 이행여부 지도점검을 하고 있다. 동작구청 제공

이처럼 '룸 선호 현상'이 짙어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룸이 방역의 최선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같은 공간이라도 환기가 얼마나 잘되는지, 침방울이 얼마나 많이 튀는지에 따라 감염 위험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식사를 할 때 다른 사람과 얼마나 분리돼서 먹느냐를 신경 쓰기보다는 타인과 같은 음식을 공유하지 않고 먹는 것과 같은 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학과 교수는 "홀에도 환기 공조시스템이 있다면 공기의 흐름 때문에 밀폐된 룸에서 식사하는 것보다 감염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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