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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사마'라 불리는 남자, 가와사키 수호신 정성룡

중앙일보

입력

2020년 가와사키 2관왕 주역 골키퍼 정성룡(왼쪽).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2020년 가와사키 2관왕 주역 골키퍼 정성룡(왼쪽).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카미사마(神様). 일본 프로축구에서 ‘신’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다.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한국인 골키퍼 정성룡(36)이다.

2020년 J리그·일왕배 2관왕 주역 #0점대 실점률 리그 최우수골키퍼 #기부 활동도 열심인 다둥이 아빠 #국가대표가 목표, 은퇴까지 노력

그는 2020시즌 가와사키를 2관왕으로 이끌었다. 새해 첫날(1일) 열린 일왕배(컵대회) 결승전에서 감바 오사카를 상대로 무실점 승리(1-0)를 완성했다. 앞서 J리그1 우승에도 앞장섰다. 가와사키의 클럽하우스에 있는 정성룡을 최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나를 ‘가와사키 수호신’으로 불러주는 팬들이 있다. 정말 감사하다”며 웃었다.

수호신은 그에게 걸맞은 이름이다. 그는 2016년부터 5시즌 J리그에서 뛰며 세 차례(2017, 18, 20년) 우승을 맛봤다. 가와사키는 지난해 26승5무3패(승점 83)를 기록했다. 2위 감바 오사카와 승점 차 18의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지난 시즌 정성룡은 0점대 실점률(34경기 31실점, 경기당 0.91)로 리그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됐다.

선방만이 아니었다. 특히 정성룡이 빛난 건 공격이었다. 그는 팀 공격의 시발점이 됐다. 그는 “팀 전술이 공격적이었다. 골키퍼부터 더 앞쪽에 서서 커버하고, 빌드업(공격 전개)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정성룡은 선방 뿐만 아니라 팀 공격의 시발점 역할도 했다.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정성룡은 선방 뿐만 아니라 팀 공격의 시발점 역할도 했다.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일본 생활 6년 차. 정성룡 말투에 일본어 특유의 억양이 묻어 있다. 그는 “일본 동료들과 일본어로 소통하려 노력했다. 경기 중 ‘슈츄(集中)’란 단어를 자주 쓰는데, ‘집중하라’는 얘기다. 우리는 수비 때 모두 하나가 되어 막았다. J리그 베스트11 중 우리 팀 선수가 9명”이라고 소개했다.

J리그는 근래 한국 골키퍼를 선호한다. 정성룡 외에도 김승규(가시와)·권순태(가시마)·김진현(세레소) 등이 있다. 정성룡은 “한국 골키퍼가 일본에 온다고 뛴다는 보장은 없다. 기량이 (일본 골키퍼보다) 낫다기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J리그도 지난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개막 라운드만 치르고 중단됐다가 7월 재개됐고, 12월에야 종료했다. 팀 훈련 중단으로 4~5월 6주간 집에만 머물렀다. 정성룡은 “일본에 확진자가 많았다. 팀별 규칙에 따라 승규와 순태도 못 만나고 메시지만 주고받았다. 거실에 매트를 깔고 지인이 던져 주는 공을 받으며 개인 훈련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성룡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취약계층 등을 위해 써달라며 3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해외에 있어도 난 한국인이다. 국내 어려운 일을 지나칠 수 없었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1985년생 소띠다. 신축년 올해에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소처럼 힘이 넘치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2020년 가와사키 2관왕 주역 골키퍼 정성룡(왼쪽).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

2020년 가와사키 2관왕 주역 골키퍼 정성룡(왼쪽).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

36세 정성룡은 2일 가와사키와 재계약했다. 그는 “골문을 지킬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김병지, 이운재 형처럼 롱런하고 싶다”고 말했다. 골키퍼인 김병지는 46세, 이운재는 39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그는 아들과 딸을 둘씩 둔 ‘다둥이 아빠’다. 그는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영상통화를 자주 한다. 두 아들은 축구선수가 꿈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나처럼 골키퍼다. 한국이 그리울 때는 K리그에서 뛰었던 수원, 포항, 성남 경기를 챙겨봤다”고 말했다. (정성룡은 2019년 12월 이후 1년여만인 2일 귀국해 현재 자가격리 중이다.)

정성룡은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였다. 2016년 이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그는 “(이) 동국이 형이 ‘선수는 운동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국가대표가 되는 게 최고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했다. 동감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은퇴하는 그 날까지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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