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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경희대 제자도, 박원순 캠프 8인도 "2차가해 멈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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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백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 A씨의 자필 편지를 공개한 것과 관련, 경희대 학생들이 이를 “2차 가해이자 완벽한 피해자다움 강요”라고 비판하며 연서명 운동에 들어갔다. 피해자 A씨를 지원하는 여성·시민단체는 A씨의 실명을 노출한 것을 두고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과 김 교수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며 거리로 나섰다.

“성폭력의 80%는 지인…편지와 피해사실, 관련 없어”

과거 김민웅 교수의 수업을 수강했다고 소개한 경희대생이 발표한 성명 내용 일부. ['학생행진' 페이스북 캡처]

과거 김민웅 교수의 수업을 수강했다고 소개한 경희대생이 발표한 성명 내용 일부. ['학생행진' 페이스북 캡처]

과거 김 교수의 수업을 수강한 경희대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준서, 이윤서 씨는 지난 27일 ‘교수님! 성폭력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2차 가해는 이제 없어야만 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연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수님은 ‘어떤 시민들의 어떤 판단’을 기대하고 편지를 공개했는지 궁금하다”며 “편지 공개의 목적은 ‘(박 전 시장과 A씨가) 친밀한 관계이기에 성폭력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는지요”라고 물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해자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쓴 편지를 올리는 과정에서 실명을 노출해 A씨 측 대리인으로부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됐다. 김 교수는 당시 편지에 대해 “자, 어떻게 읽히십니까.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주장한 여성이 쓴 편지”라며 “2019년 9월엔 자기 동생 결혼기념 글까지 부탁한다. 시민 여러분의 판단을 기대해본다”고 썼다.

“완벽한 피해자다움 규정…언제까지 입증해야 하나” 

김민웅 교수가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 다움을 단정한 바 없다"고 한 것과 관련, 경희대 학생들은 이를 "완벽한 피해자 다움 규정"이라고 반박했다. ['학생행진' 페이스북 캡처]

김민웅 교수가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 다움을 단정한 바 없다"고 한 것과 관련, 경희대 학생들은 이를 "완벽한 피해자 다움 규정"이라고 반박했다. ['학생행진' 페이스북 캡처]

경희대 학생들은 이를 두고 “편지 안에서 보이는 것이 박 전 시장과 (A씨가) 친밀한 관계였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평가의 잣대 위에 놓이게 한 행위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2차 가해”라고 규정했다. 또 “성폭력 피해의 80%는 이웃, 가족, 친구, 동료 등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 발생한다”며 “친밀한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편지 내용을 게시한 건 완벽한 피해자다움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사건이 불거진 이후 김 교수가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다움을 단정한 바가 없다”고 해명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끊임없이 평가의 잣대에 올라야 했고 자신의 피해자다움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에 매번 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개한 편지가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성폭력 피해자가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의 피해자다움을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냐”며 되물었다.

“경찰, 구속수사 안해 유사 사건 재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사건 피해자 정보 유출ㆍ유포 사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2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사건 피해자 정보 유출ㆍ유포 사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의 지원단체 연합인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은 민 전 인사기획비서관과 김 교수에 대한 구속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28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경찰·여성가족부에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 정보 유출·유포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0월에도 피해자 실명과 직장명을 네이버 밴드, 블로그에 공개한 사람들을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의 미온적 대처로 비슷한 일이 재발했다는 게 요지다. A씨의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평소 피해자가 자신의 신상을 드러내지 않기를 원한다는 점을 악용해 A씨를 좌절시키려는 것으로, 고의를 넘어 악의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朴 선거캠프 8명, “2차가해 말고 조사기관에 제출하라”

2018년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일했던 8명이 2차 가해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26일 발표했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2018년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일했던 8명이 2차 가해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26일 발표했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한편 이대호 전 서울시 미디어비서관 등 지난 2018년 박 전 시장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8명의 인사도 지난 26일부터 ‘박원순을 지지했고 피해자 2차가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지지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맥락을 삭제한 자료는 피해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편견을 갖게 한다”며 “이는 피해자에게 큰 폭력인 만큼 제출할 자료가 있다면 조사 기관에 연락하고 기다리라”고 촉구했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도 이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교수는 수사에 영향을 끼칠 불순한 목적으로 피해자의 손편지를 공개했다”며 “인권위가 김 교수와 민 전 비서관에게 인권교육을 받으라고 권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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