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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력 75%' 그놈이 코로나 점령…2.3차 유행은 변종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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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연합뉴스]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연합뉴스]

영국에서 발견돼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변종은 애초 두 가지가 비슷한 시기에 함께 나타났다가 전파력이 더 강한 녀석만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9월 바이러스 변종 동시 유행 #11월부터 변종2가 전국 지배 #남아공에도 유사한 변종 출현 #변종 탓에 2,3차 파도 시작돼 #국경 넘어 새 유행 일으킬 수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행하는 또 다른 변종도 영국 변종과 겹치는 돌연변이를 포함하고 있지만, 감염성은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국에서 새로운 변종 출현해 코로나19의 대대적인 확산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은 만큼 변종 출현에 대비해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을 확대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9월에 두 가지 변종 출현

지난 23일 영국 도버 항 입구에서 차량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한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변종이 확산하면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영국에서 오는 차량 등의 이동을 막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3일 영국 도버 항 입구에서 차량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한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변종이 확산하면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영국에서 오는 차량 등의 이동을 막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변종들의 계통도. 보라색이 영국의 변종1, 붉은색이 변종2를 나타내고 있다. 오렌지색은 남아공의 유사 변종을, 맨 아래 황토색은 호주의 변종이다. 네 가지 변종은 모두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 중에서 수용체 결합 부위인 501번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에서 타이로신으로 바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자료:홍콩대 논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변종들의 계통도. 보라색이 영국의 변종1, 붉은색이 변종2를 나타내고 있다. 오렌지색은 남아공의 유사 변종을, 맨 아래 황토색은 호주의 변종이다. 네 가지 변종은 모두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 중에서 수용체 결합 부위인 501번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에서 타이로신으로 바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자료:홍콩대 논문

지난 22일(현지 시각) 홍콩대학 등 홍콩·중국 연구팀은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medRxiv)에 올린 논문을 통해 영국에서는 지난가을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종(variant, 변이체) 두 가지가 동시에 유행했다고 밝혔다.

영국 연구진들이 공개한 바이러스 유전체(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두 변종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중에서도 수용체 결합 도메인(RBD)에 N501Y 돌연변이가 있었다.

RBD는 스파이크 단백질 중에서도 사람 세포의 수용체인 앤지오텐신 전환 효소2(ACE2)와 직접 결합하는 부위를 말한다.
N501Y 돌연변이는 단백질의 501번째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N)에서 타이로신(Y)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홍콩 연구팀에 따르면 변종1은 N501Y 돌연변이는 있었지만, 69번과 70번 위치의 아미노산이 그대로 유지됐다.
변종2는 N501Y 돌연변이와 함께 69·70번 아미노산이 떨어져 나간 결실(deletion) 돌연변이도 지니고 있었다.

전파력 75% 높은 변종이 장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들. 미국 국립 알레르기 감염병 연구소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들. 미국 국립 알레르기 감염병 연구소 [AP=연합뉴스]

연구팀은 돌연변이가 없는 501N과 두 변종의 재생산지수를 산출해 이를 바탕으로 전염성을 서로 비교했다.
재생산지수는 바이러스 감염자가 몇 명의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비교 결과, 9월 초부터 11월 중순 사이 웨일스 지역을 중심으로 퍼진 변종1은 501N보다 전염성이 10%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샘플 가운데 변종1이 차지한 비율도 전체의 2%를 넘지 않았다.

이에 비해 9월 20일 영국 남동부 지역에서 처음 발견돼 퍼지기 시작한 변종2는 501N보다 전염성이 75%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변종2는 10월 초 전체 바이러스의 0.1%에 불과했으나, 11월 말에는 49.7%로 높아졌고, 12월 초순에는 62%나 차지했다.

B.1.1.7(VUI-202012/01)이란 이름이 붙은 변종2는 이제 영국 내에서 501N은 물론 변종1까지 제치고 지배적인 변종이 된 상태다.

연구팀은 N501Y가 수용체와 더 잘 결합할 수 있어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더 잘 침입하고 감염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아공 변종은 11월부터 확산

지난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방위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동부의 인구 밀집지역인 알렉산드라 타운에 있는 남성 호스텔을 순찰하며 엄격한 봉쇄를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방위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동부의 인구 밀집지역인 알렉산드라 타운에 있는 남성 호스텔을 순찰하며 엄격한 봉쇄를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남아공에서도 새로운 변종이 출현해 11월부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도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곳이다.
24일 현재 95만4258명이 감염됐고, 2만5657명이 사망했다.

콰줄루-나탈 대학 등 남아공의 연구팀이 22일 medRxiv에 올린 논문에 따르면 남아공의 변종 역시 수용체 결합 도메인에 N501Y 돌연변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영국의 변종2와는 달리 69번과 70번 위치의 아미노산이 그대로 유지됐고, RBD에는 N501Y 외에도 스파이크 단백질 아미노산 8개가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501.V2'란 이름이 붙은 이 변종은 지난 6~7월 1차 대유행(파도, wave) 이후 코로나19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남아공 이스턴 케이프 주(州) 넬슨 만델라 베이에서 처음 나타났고, 지금은 이스턴 케이프뿐만 아니라 웨스턴 케이프 주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英보다 남아공 변종이 전염성 더 강해"

지난달 13일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에 있는 리빙스턴 병원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당시 이스턴 케이프 주에서는 코로나19 사례가 급증했고 사망자도 치솟았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에 있는 리빙스턴 병원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당시 이스턴 케이프 주에서는 코로나19 사례가 급증했고 사망자도 치솟았다. AP=연합뉴스

남아공 연구팀은 "변종이 가진 돌연변이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아직 명확하게 평가된 것은 아니지만, 전염성이 증가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N501Y 돌연변이와 더불어 484번 아미노산이 글루탐산(E)에서 라이신(K)으로 바뀐 E 484K 돌연변이는 사람 수용체와 결합하는 부위(RBD)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전염성이 높다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동일 숙주 내에서 바이러스 돌연변이가 중복해서 발생하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돌연변이를 여럿 지닌 변종이 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환자처럼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오랫동안 배출하는 만성 감염자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전문가는 "영국 변종과 비교할 때 남아공 변종이 사람 세포에 더 잘 결합해 전파력이 더 강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정부는 남아공에서 변종 바이러스가 자국 내로 유입되자 현지 시각으로 24일 오전 9시부터 남아공발(發) 입국을 잠정 중단시켰다.
이번 조치는 최근 남아공을 다녀온 2명이 새로운 변종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2차, 3차 파도는 새 변종 출현 탓

8월 이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8월 이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 아키타(秋田) 현립대학의 생물자원과학과 코니시 도모카즈 교수는 21일 bioRxiv 사이트에 사전 공개한 논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변종이 출현해 기존에 효과를 보였던 방어선을 뛰어넘는 바람에 코로나 19가 다시 창궐하는 2차, 3차 파도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코니시 교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지난 4월까지 세계 곳곳에 골고루 퍼졌고, 국경이 폐쇄된 이후에는 각국에서 독립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며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에게 더 높은 감염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돌연변이는 2차 파도의 결과일 수도, 원인일 수도 있다"며 "영국이나 미국·프랑스·호주에서는 확진자가 급증하는 피크가 발생하기 몇 주 전에 변종이 나타났고, 바이러스가 변종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피크의 원인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남아공의 경우 변종이 갑자기 나타났고 곧바로 피크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돌연변이가 피크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게 코니시 교수의 분석이다.
확진자가 많으면 그만큼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고, 따라서 변종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니시 교수는 "남아공의 경우 변종이 나타났는데도 국가 감시 체계에서 이를 잡아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한 나라의 변종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 또 다른 대유행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아공 연구팀도 논문에서 "새로운 변종을 조기 발견하고, 세계적인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8월 이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8월 이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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