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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훈련한 의료진, 맹장염 걸린 코로나 환자 수술로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22일 오후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충수염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A씨를 '음압텐트'로 감싸고 수술실로 옮기는 모습. 제공 서울의료원

22일 오후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충수염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A씨를 '음압텐트'로 감싸고 수술실로 옮기는 모습. 제공 서울의료원

서울 도봉구에 사는 67살 A씨는 하마터면 올해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를 보낼 뻔했다.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이 나와 수술실을 찾지 못해서다.

A씨는 지난 21일 갑자기 배가 아파 근처 병원을 찾았다가 충수염 진단을 받았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충수염은 맹장 끝에 6~9cm 길이로 달린 충수돌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흔히 ‘맹장염’이라고도 한다.

진행된 정도에 따라 조기 충수염, 화농성 충수염, 괴저성 충수염, 천공된 충수염 등으로 분류하는데 염증이 시작된 환자는 20%는 24시간 안에, 70%는 48시간 안에 천공(구멍 뚫림) 충수염으로 진행한다. 만약 천공이 생길 경우 골반이나 횡격막 아래 등에 농양이 생길 수 있고 상처 부위 등이 감염 돼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빨리 수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에 앞서 각종 검사를 받은 A씨는 뜻밖에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이 나온 것이다. 해당 병원은 A씨에게 "우리 병원에 코로나19 환자 수술을 위한 장비와 시설이 없어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결국 A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수차례 전화를 돌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였다고 한다.

A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건 서울의료원이었다. 21일 밤 겨우 서울의료원에 입원한 A씨는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마친 후 22일 오후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 컨테이너식 이동병상이 설치돼 있다.   한 서울시는 현재 이곳에 환자가 입실 중이며 정상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 컨테이너식 이동병상이 설치돼 있다. 한 서울시는 현재 이곳에 환자가 입실 중이며 정상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울의료원이 코로나19 환자인 A씨를 입원시켜 수술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상 훈련 덕분이었다. 서울의료원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던 지난 봄 코로나19 환자의 응급수술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환자 발생 시 이동 동선을 미리 파악해 움직여 보고 수술 상황을 가정해 실전처럼 연습했다. A씨는 이 훈련 이후 실제 수술대에 오른 첫 코로나19 응급외과 수술 환자였다.

실전에서 코로나19 환자인 A씨를 수술실로 옮기는 작업도 간단치 않았다. 의료진은 오염된 공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설계된 ‘음압 텐트’를 이용해 A씨를 이송했다. 수술 전 기저질환 확인 결과 A씨는 천식을 앓고 있었다. 안전한 수술을 위해서는 외과, 감염내과, 호흡기 내과, 마취과 전문의가 힘을 모아야 했다.

수술 당일 조영규 서울의료원 외과 주임과장과 전공의, 간호사 등은 모두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수술에 참여했다. 조 과장은 “레벨D 방호복을 입으면 이미 장갑 2개를 끼게 되는데 여기 위로 무균 장갑을 하나 더 끼워야 했다. 1000번이 넘는 충수염 수술을 했지만, 장갑을 3개나 끼고 수술한 건 처음이었다”며 “그렇다 보니 섬세한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30분이면 끝나는 수술이지만 A씨는 1시간 30분이나 필요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조 과장은 “코로나19 환자가 들어왔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한 동선이다”며 “미리 훈련한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추가 감염없이 의료진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A씨의 수술 회복 경과를 본 후 코로나19 감염경로 파악 등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코로나19 치료도 함께 할 계획이다. 병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충수염은 수술 후 3~4일이면 퇴원이 가능하지만 A씨의 경우 코로나19 치료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원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진으로 많이 불안했는데 의료진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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