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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20년, 매체 혁명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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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한 해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 멋대로 정한 것이다. 우리가 1월 1일이라고 이름 붙인 그날에 천문학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낮이 가장 긴 날도 짧은 날도 아니고 낮밤의 길이가 같은 날도 아니다. 그냥 옛날 누군가 그날을 새해 첫날로 정한 게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일으킨 혁명 #더 빠르고 많고 짧아진 뉴스들 #정작 정보의 품질은 희생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력에는 힘이 있어서, 한 해의 시작과 끝을 멋대로나마 정해놓으면 지난 1년을 반성하고 다가올 1년을 계획하는 특별한 기간이 생긴다. ‘2020’이라는 숫자에도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2020년이 저물어가니, 한 해뿐 아니라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1세기의 첫 21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게 그 기간은 무엇보다 언론매체 혁명의 시대였다. 2000년 2월에 오마이뉴스가 창간했고, 같은 해 5월에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하루에 뉴스를 여러 번 보게 됐다. 이전까지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 두 번, 아침에 종이 신문을 읽고 저녁에 방송 뉴스를 보는 걸로 세상 소식을 업데이트했더랬다.

실시간 속보의 시대가 열리자 뉴스 주기가 짧아졌다. 포털과 언론사에도 그게 이득이었다. 사람들이 사이트에 더 자주 올수록 광고를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으니. 그래서 이제 우리는 과거에는 한 번에 소화했을 기사를 여러 매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쪼개 본다. 1보, 2보, 종합, 종합 2보…. 물론 그런다고 딱히 사안을 더 잘 이해하는 건 아니다.

인터넷 언론을 차리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 네이버뉴스에서 기사를 볼 수 있는 매체는 15개였다. 지금은 500개가 넘는다. 클릭을 향한 무한 경쟁 속에 매체들은 제목 장사를 벌이고, 전에는 쓰지 않았던 사소한 내용까지 시시콜콜 기사화한다. 단독! 아이돌 A씨가 인스타그램에 누군가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2009년에 스마트폰이 보급된다. 사람들이 주머니에 기사 단말기를 넣고 다니면서 중독된 것처럼 수시로 새 소식을 확인했다.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글자가 빼곡한 기사를 읽기 어려웠는데, 곧 ‘카드뉴스’라는 포맷이 나왔다. 글자 수를 확 줄여 만든 일종의 디지털 그림책이었다.

소셜 미디어가 인기를 얻고 언론을 대체하기 시작한 게 이 즈음이다.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글자 수가 적은 정보일수록 더 빨리 더 넓게 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글자 수가 적어야 반응이 더 즉각적으로 나온다. 트위터는 글자 수를 제한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에 집중했다. 글자 수가 적다는 건 맥락과 깊이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지나자 긴 기사 아래 ‘누가 요약 좀’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길어서 읽지 못하겠다는 거다. 다음은 2016년에, 네이버는 2017년에 인공지능 기사 요약 서비스를 개시하며 그런 요구에 부응했다. 한데 이제 사람들은 석 줄 요약도 읽기 싫은가 보다. 아예 문자 매체를 떠나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 젊은 세대에서는 영상 길이가 더 짧은 틱톡이 뜬다.

이쯤 되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우리는 20년간 더 빠르고 더 많고 더 넓게 퍼지는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정보의 품질을 희생해왔다. 매체도, 플랫폼도, 디바이스도, 모두 그 한 방향이었다. 뉴스는 빠를수록, 많을수록, 널리 퍼질수록 좋다고 여겼다. 물론 공짜여야 하고.

분명 언론과 기자들이 반성할 게 많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는 마르크스가 한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지난 20년간 미디어 업계를 바꾼 진짜 중요한 변수는 정보통신 기술이었다. 기자 정신의 문제 차원이 아니었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같은 현상들이 일어났다는 게 그 증거다.

2020년 10월 한겨레가 직원들에게 ‘디지털 전환 제안서’를 보냈다.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자는 내용과 함께 적혀 있었다는, “종이신문으로 돌아갈 잔도를 태워버리자”는 문장이 슬펐다. 말은 안 했지만 다른 신문들도 내심 같은 의견일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인포그래픽과 인터랙티브 기술로 스마트폰 이용자의 눈을 붙잡는 게 해법인가?

한 언론사나 언론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매체 혁명이 낳을 사회를 상상하면 두렵다. 현란하고 자극적이고 무의미하고 파편화된 정보와 바로 꼭 그러한 삶…. 그 전에 우리가, 공짜가 아니더라도, 자기편을 들지 않더라도, 심지어 지루하더라도, 품질 좋은 정보를 지원할 각오를 다지게 될까? 자신이 없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