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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아시아 열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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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지난 나흘간 14개국의 소리없는 전쟁터로 변모해 있었다.

인구 5억3천만명에 21세기 시장.자원의 보고인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의 정상과 노무현 대통령 등 한.중.일 3국의 정상이 한 자리에 모여 치열한 국익 게임을 벌였다.

중국은 동남아 각지의 거대한 화교 자본을 발판으로 가장 먼저 아세안을 잠식해 오고 있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 등 포괄적인 경협 원칙이 포함된 문서에 서명, 선발 주자로 나서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의 양자 교역은 지난해 5백47억달러로 10년간 여섯배의 급신장세였다. 올 상반기엔 벌써 55.5%가 늘어난 3백42억달러에 이른다.

일본은 연간 1천억달러의 대 아세안 교역량을 갖고 있다. 중국보다 1년 늦었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에 FTA 등 포괄적 경협 원칙에 서명, 각축을 벌였다.

한국은 뒤늦게 따라붙은 모양새였다. 盧대통령은 "중국은 농업에 상당한 경쟁력을 갖춰 아무 문제가 없고, 일본은 농업 구조조정이 완료된 상황이어서 아세안과의 새로운 개방단계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고립된 상태로 가면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우리의 연간 아세안 교역량은 3백52억달러 수준이다.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실장은 "몇년간 한국은 FTA.개방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시민단체.노조.한총련 등이 나서 극렬히 반대하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고 안타까워 했다.

아세안 회원국도 아니면서 발리에 나타난 인도가 주목을 받았다. 귀도 잘 안들리는 노령의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가는 곳마다 "아세안에 무역.투자 장벽을 제거해 주겠다"고 역설했다. 아시아는 지금 열국지의 상황이다.

최 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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