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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가법 있는데 헌재 판례 뒤진 경찰…미심쩍은 이용구 내사종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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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앞.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택시기사를 폭행해 논란이 된 장소다. 20일 택시를 타고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지난달 6일 오후 11시30분쯤 한 택시기사는 이 차관을 깨우다 욕설을 듣고 멱살을 잡혔다. 위협을 느낀 택시기사는 112에 신고했다. 이 차관은 당시 취임 전 변호사였다.

20일 경찰이 폭행 사고가 일어난 지점이라 밝힌 서울의 모 아파트. 박현주 기자

20일 경찰이 폭행 사고가 일어난 지점이라 밝힌 서울의 모 아파트. 박현주 기자

경찰은 이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을 적용하지 않고 단순폭행죄로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경찰이 이 차관에게 특가법 대신 폭행죄를 적용한 것이 적법했는지, 또 경찰이 폭행죄를 적용하면서 입건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것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의 단순폭행죄 적용 논란  

경찰에 따르면 택시기사의 첫 신고가 이뤄진 시점은 지난 11월 6일이고, 내사를 종결한 건 11월 중순경이다. 첫 신고 후 약 열흘이 소요된 셈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서둘러 내사를 종결한 게 아니다”라며 “승객이 변호사라 내부적으로 법리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이용구 차관이 변호사 신분이라는 사실을 내사 중 알게 됐다는 의미다.

(과천=뉴스1) 유승관 기자 =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16일 새벽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를 마친 후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약 17시간여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차 심의를 거친 끝에 '정직 2개월'을 의결했다. 2020.12.16/뉴스1

(과천=뉴스1) 유승관 기자 =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16일 새벽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를 마친 후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약 17시간여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차 심의를 거친 끝에 '정직 2개월'을 의결했다. 2020.12.16/뉴스1

경찰, "폭행 당시는 운행 중 아니라 판단"

경찰은 폭행죄를 적용해 사건을 종결한 것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든다. 먼저 택시 기사의 진술이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인 택시 기사는 조사 과정에서 “목적지인 아파트 앞에 도착했고 운행 중이 아니라 정차 중이었다”며 “내 신고 자체가 과도했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를 뒷받침할 블랙박스도 없어 이를 토대로 법리 검토를 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진술에 따라 운전자가 ‘운행 중’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경찰, "헌재·대법 판례도 있어" 해명 

경찰은 또 판례를 이유로 들었다. 경찰은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 결정례를 들어 해명했다. 택시 안에서 난동을 피우고 경찰서 앞에 정차한 것은 운행 중이 아니므로 특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2008년 대법원’ 판례와,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는 법관의 해석에 의해 '운행 중'의 의미에서 배제된다고 판단한 2017년 헌법재판소 결정례다. 경찰은 이에 근거해 1)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2)운전자가 계속적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ㆍ정차했기 때문에 특가법 적용이 안 된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경찰서. 연합뉴스

서울 서초경찰서. 연합뉴스

경찰이 참고한 판례는 특가법 개정 전 판례   

하지만 경찰이 인용한 2017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현행법이 아닌 개정 전 법률이다.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예시로 든 사례와 어긋나는 최신 판례도 있다. 지난 3일 헌재는 택시 안에서 기사를 폭행한 승객이 “다른 승객이 없는 경우나 일시 정차한 상황에서는 운전자에 대한 폭행 책임이 달라야 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건 평등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여객의 승‧하차 등을 위한 일시정차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계속된 운행이 예정되어 있다”며 “운전자에 대한 폭행이 발생하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지나치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시민단체, "특가법 적용했어야"  

국민의힘 등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차관에게 단순폭행죄가 아닌 특가법 적용이 가능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찰은 판례를 근거로 이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을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이 어려운 ‘반의사불벌죄’인 폭행죄를 적용해 종결했다는 입장이다. 특가법은 제5조의 10 제1항에 택시 또는 버스를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자는 피해자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특가법은 실무상 정착되어있는 법임에도 일선 경찰서가 공지되지 않은 판례를 먼저 살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입건 후 검찰·법원 판단 받았어야"

논란이 거세지자 피해를 본 택시기사를 재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은 지난 19일 특가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검찰에 이 차관을 고발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변호사 측 눈치를 너무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범한 변호사(법무법인YK)는 “폭행도 요즘은 내사 종결 처리를 하지 않는데 이런 사안은 특가법을 적용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다”며 “모호하더라도 경찰이 임의로 판단할 게 아니라 최소한 입건한 다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한편 본지는 해당 택시기사에 연락을 취해 관련 내용을 물었지만 “더 이상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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