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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법 우려에, 통일부·외교부 일제히 유엔 공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북한에 전단이나 물품을 보내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개정 남북관계 발전법에 대해 국제적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가 조직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킨타나 인권보고관 “법 재고 권고” #통일부, 유엔인사에 이례적 반박 #“대북전단, 북 인권 개선 증거 없어” #강경화 “표현의 자유, 제한 가능”

통일부는 17일 오전 출입기자단에 입장문을 보내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적 기관이 적절한 절차에 따라 개정법을 재고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한 것을 비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회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법률을 개정한데 대해 이런 언급을 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유엔 고위 인사의 발언에 유감을 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427자짜리 입장문에 킨타나 보고관은 세 차례 지칭하는데, 한 번만 ‘킨타나 보고관’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공식 직함 없이 ‘킨타나’라고만 하거나 ‘동인’으로 표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킨타나 보고관을 향해 “‘다수의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 안전 보호’를 위해 ‘소수의 표현방식에 대해 최소한으로 제한’했다는 점을 균형 있게 봐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생득권인 인권 문제에 ‘다수의 권익이 소수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들이대는 것처럼 들릴 소지가 있다. 모든 국제 인권 규약은 어떤 사람도 속한 집단의 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권리를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에는 국내 주재 외신 기자들에 12쪽짜리 영문 설명자료도 배포했다. “전단 살포가 북한 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없다”며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 확대가 실질적 인권 개선에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나 ‘평화 이벤트’를 펼친 2018년 이후 북한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됐다는 증거도 없다. 유엔은 16일(현지시간) 16년 연속으로 북한 정권에 의한 심각한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정부는 2년 연속으로 결의안 공동 제안국에서 빠졌다.

같은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CNN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수석 국제특파원과 인터뷰한 내용이 전 세계로 방송됐다. 아만푸어가 미 의회의 비판을 전하자 강 장관은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absolute) 권리는 아니다”며 “접경지역 주민들은 수년 동안 전단 살포 금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가 제약될 수 있다는 말은 맞지만, 문제는 그 정도다. 강 장관은 전단만 언급했지만, 새 법은 전단뿐 아니라 보조기억장치 등 물품과 금전, 그밖의 재산상 이익까지 살포 금지 대상에 넣었다.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야당이 반발한 이유다.

강 장관은 “대북 전단 살포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경우에만 제한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정작 법에는 어떤 경우에 위협으로 판단할지 구체적 규정이 없다. 결국 자의적 판단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정준현 단국대 법대 교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사전 검열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강 장관의 발언은)자칫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강 장관이 2006년부터 유엔에서 일하며 전공으로 삼은 분야가 인권이다. 외교가에서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 국제적 인권 전문가 출신 외교부 장관이 있는 나라가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선 것 자체가 씁쓸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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