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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가 우려한 괴물 태어났다, 무소불위 권력 쥔 文의 공수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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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영상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영상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가 공수처를 반부패 정책의 핵심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 후 입법을 추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안을 심의·의결한 15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수처 추진의 역사를 언급하며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공수처와 현재 출범을 앞둔 공수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공수처 권한은 더 세졌고, 견제 장치는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①기소권까지 가진 공수처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공수처의 모습은 2004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직부패수사처의 설치에 관한 법률안에 담겨 있다. 당시 법안을 보면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범죄행위 등에 관한 수사를 관장하기 위하여…’라며 공수처에 수사권만 부여하고 있다. 다만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이 부당하게 불기소처분을 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공수처장은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 [중앙포토]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 입법된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직무를 ‘고위공직자범죄 등에 관한 수사’와 ‘공소제기와 그 유지’로 규정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법이 비판받는 핵심적인 이유다. 검찰 개혁을 얘기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자면서 왜 공수처에는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누리게 하냐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생각이기도 했다. 2004년 정부가 공수처법안을 마련할 당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은 공수처에 기소권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현재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해서 실패한 부분을 새로 생기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현 공수처)가 또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2012년 중앙일보와 인터뷰 도중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2012년 중앙일보와 인터뷰 도중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②“원전 수사, 공수처가 가져가면…”

노무현 정부의 공수처와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는 타 기관과의 관계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공수처법엔 ‘국회·감사원·대검찰청·국방부는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사건에 대하여는 공수처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른 기관이 공수처에 사건 수사를 의뢰하는 형식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법엔 ‘(공수처장이)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예컨대 검찰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던 중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면, 검찰은 모든 수사 자료를 공수처에 넘기고 손을 떼야 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의 이첩 요구권 때문에 공수처를 다른 수사기관의 상급 기관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나 월성 1호기 원전 폐쇄 등 정권에 불리한 사건을 공수처가 이첩 요구해 가져간 뒤 ‘우리가 보니 문제없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며 “위험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2019년 4월 29일 이상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19년 4월 29일 이상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경록 기자]

노무현 정부의 공수처법은 다른 기관에서 의뢰받은 사건이 공수처 수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 나더라도, 검찰에 송치해 종결토록 했다. 그 이유를 ‘검찰이 공수처에 대한 통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함’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는 이첩받은 사건을 부당하게 종결해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③야당 반대해도 처장 임명 가능

노무현 정부의 공수처법엔 ‘처장은 국가청렴위원회(현 국가권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청렴위 위원은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 중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명은 국회 추천자, 3명은 대법원장 추천자를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청렴위 의결을 거치도록 한 것은 공수처를 청렴위 소속으로 두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공수처장 임명 방식이 중립성을 해친다는 비판은 있었다.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 입법을 추진하던 민주당은 야당의 거부권을 강조하며 공수처장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공수처장은 추천위원 7명 중 5분의 4인(6인)이 찬성해야 후보를 만들 수 있다”며 “야당 추천위원이 2명이기 때문에 비토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된 후 퇴장하며 열린민주당 김진애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바뀐 법에 따라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2명의 후보를 추릴 수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된 후 퇴장하며 열린민주당 김진애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바뀐 법에 따라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2명의 후보를 추릴 수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7월 시행된 공수처법에선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 등 전체 7명으로 구성되고, 이 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추천 후보 2명을 결정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은 그중 1명을 공수처장으로 지명한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특정 인물이 후보로 추천될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10일 공수처법을 개정하고, ‘위원 6인 이상’으로 돼 있던 공수처장 후보 추천 의결 요건을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으로 바꿨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거부해도 공수처장 추천이 가능해졌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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