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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으로 나랏돈 갚나“ 한진重·두산 M&A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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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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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산업은행이 민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입찰제안이 마감하면서 이른바 ‘셀프 매각’ 논란이 불거졌다. 새 주인을 기다리는 매물은 산업은행 등이 보유한 한진중공업 주식 63.4%인데,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가 이번 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이 일시적으로 투입한 돈을 회수하는 과정에 공공기관 자금이 다시 쓰이게 된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2월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부실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에 필리핀에서 법정관리 절차를 거치다가, 산업은행 등이 빌려준 6800억원대 채권이 지분으로 출자전환 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산업은행도 회사의 주요 주주가 됐다. 이후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을 다시 민간에 팔기로 했다. 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투입한 돈을 회수하는 과정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사진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사진 한진중공업

그리고 14일 한진중공업의 새 주인 후보는 3곳으로 좁혀졌다. 이날 산업은행은 동부건설ㆍ케이스톤파트너스ㆍSM상선 컨소시엄이 최종입찰 후보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이르면 다음 주 이들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날 산업은행 발표에서 KDB인베스트먼트가 케이스톤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돈을 댔다는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영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셀프매각 논란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셀프 매각을 하면 산업은행의 지원 자금은 공식적으로 회수한 것으로 처리되면서도, 실질적으론 정부가 기업 운영에 손을 떼지 않은 상태가 된다.

산업은행 측은 “KDB인베스트먼트는 산업은행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컨소시엄에 참여하기 때문에, 정부 돈을 다시 투입한다는 해석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매각 과정도 국가계약법상 모든 절차가 공개돼 있다”는 입장이다.

KDB인베스트먼트는 2019년 산업은행이 설립해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조기 회생을 돕는다는 기본 취지가 퇴색되고 행정 절차만 늘어나는 비효율만 가중됐다”고 평가했다.

셀프 매각 논란은 두산인프라코어(이하 두산인프라) 매각 과정에서도 이미 거론됐다. 두산그룹은 3조원대의 산업은행 대출금을 갚기 위해 계열사와 자산을 팔고 있는데, 이 가운데 두산인프라 매입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가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50t급 굴착기. 사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인프라코어의 50t급 굴착기. 사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인프라의 예상 매각가는 8000억원이다. 현대중공업과 KDB인베스트가 얼마씩 부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산은 산업은행 자회사에서 돈을 받아 산업은행에 갚는 절차를 거치게 됐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 지출 자금을 그대로 둔다는 건데, 이럴 거면 자산 매각 대신 장기상환을 주문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나랏돈으로 나랏돈을 갚는다는 논란을 빚는 기관은 산업은행뿐이 아니다. 두산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온 8000억원대 매물 두산타워에서도 같은 논란이 있다.

두산은 서울 동대문의 두산타워를 판 돈으로 산업은행 대출금을 갚기로 했는데, 이 건물을 사들이는 부동산 투자사 마스턴자산운용은 1500억원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빌려 대금으로 냈다. 캠코는 금융위원회 소속 공공기관이다.

이런 현상은 시장 자율성보다는 정부 개입을 확대하려는 현 정권의 의지와 연결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 출자회사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번 정부가 KDB인베스트먼트라는 자회사를 만든 것부터 민간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뜻과 거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며 “그 뜻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산업은행 자산을 그 자회사로 이전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둬야 할 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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