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코로나 검사 결과 기다리다 숨졌을 때 힘들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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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정은 간호사가 응급실 일반환자 진료에 앞서 3종 보호구(KF94 마스크, 글러브, 실드)를 갖추고 있다. [가천대길병원]

박정은 간호사가 응급실 일반환자 진료에 앞서 3종 보호구(KF94 마스크, 글러브, 실드)를 갖추고 있다. [가천대길병원]

“역학조사관이 동료 간호사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을 때였어요.” 

인천 가천대길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박정은(41) 간호사에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지난 5월 박 간호사의 동료가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를 보살피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진 적이 있다. 이 환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을 받으면서 해당 간호사도 검사를 받았지만 감염되지는 않았다. 박 간호사는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그 당시엔 그동안 흘린 땀방울이 물거품이 될까 봐 아찔했다”며 “방역 수칙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당시 환자와 간호사들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천 길병원 박정은 간호사의 코로나 사투기

10년 차 베테랑에게도 벅찬 코로나19

박 간호사는 지난 1월부터 응급실과 선별진료소를 오가며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지난 1월 21일쯤 길병원은 응급실 근처에 선별진료소를 만들었다. 병원으로 오는 응급환자 중 코로나19 환자가 있는지 사전에 분류하기 위해서다. 선별진료소에는 7년 차 이상 응급실 간호사가 투입됐다. 박 간호사도 그중 하나다. 그는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채 8시간씩 3교대로 일한다”며 “환자가 오면 코로나19 검사를 한 뒤 의심 증상이 있으면 격리실로 없으면 응급실 일반 구역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박 간호사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응급실 10년 차 베테랑이다. 그에게도 코로나19와의 전쟁은 힘든 나날이다. 박 간호사는 “선별 진료소가 있는 컨테이너는 냉·난방을 하기 어려워 한여름엔 땀이 줄줄 흘렀고 지금 겨울에는 또 손가락이 얼 정도”라고 말했다. 방호복도 벗고 입기가 어렵다. 환자가 많은 날엔 식사는 물론 화장실도 걸렀다. 퇴근할 때 땀으로 흠뻑 젖은 가운과 방호복을 벗는 건 일상이다. 박 간호사는 “보호구를 착용한 채로 음압 카트로 환자를 옮길 때면 관절이 부서지는 것처럼 힘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 결과 대기’ 응급환자 숨질 땐, 울컥

박정은 간호사(첫번째 줄 왼쪽에서 다섯번째)를 비롯한 가천대 길병원 응급실 간호사들이 사전환자 분류소 앞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천대길병원]

박정은 간호사(첫번째 줄 왼쪽에서 다섯번째)를 비롯한 가천대 길병원 응급실 간호사들이 사전환자 분류소 앞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천대길병원]

응급실 간호사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응급실 환자의 상태가 악화해 숨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가족과 만날 수 없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만이 환자 곁을 지킨다. 박 간호사는 환자 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환자에게 대신 전할 당시 병실 밖 가족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애써 담담한 척해야만 했다. 그는 “다행히 길병원에서는 돌아가신 환자분 중에 확진되신 분은 없었다”고 했다. 최근 길병원은 환자 가족 중 1명에 한해 방호복을 갖춘 채로 환자의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하고 있다.

“덕분이다” 한 마디에 다시 선 코로나 최전선

“조만간 끝나겠지, 조금만 더 힘내자” 응급실 간호사들이 매일 서로에게 하는 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지만 “덕분이다, 고생한다, 감사하다”는 환자, 보호자의 응원 덕에 외롭지 않았다는 게 박 간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받은 응원을 다짐으로 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서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잘 헤쳐가며 이겨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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