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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못지켜" 3년뒤 극단선택한 소방관, 국립묘지에 묻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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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희국 소방관(왼쪽)과 고 강기봉 소방교의 생전 모습. 사진 소방청·울산소방본부 제공

고 정희국 소방관(왼쪽)과 고 강기봉 소방교의 생전 모습. 사진 소방청·울산소방본부 제공

2016년 태풍 ‘차바’ 때 구조 활동에 함께 나섰던 동료를 잃자 죄책감에 세상을 등진 소방관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15일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25일 고(故) 정희국 소방위의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했다. 정 소방위의 유족이 지난 10월 28일 국가보훈처에 국립묘지 안장을 신청하고, 울산소방본부가 그동안 필요한 증빙 자료를 제공한 데 따른 결정이다.

 이번 승인에 따라 울산의 공원묘원에 안장된 정 소방위는 내년 봄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될 예정이다.

 정 소방위는 앞서 5월 인사혁신처로부터 위험직무 순직을 인정받았고, 지난달 6일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에 대해 일반 순직이 인정된 경우는 있었으나 위험직무 순직이 인정된 것은 정 소방위가 처음이다. 국가유공자 등록도 첫 사례라고 울산소방본부 측은 설명했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직무 수행 중 사망이 아닌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위험직무 순직이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전례가 없어 걱정했는데 올바른 결정이 내려져 다행이다”고 말했다.

 정 소방위는 지난해 8월 5일 울산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소방위가 숨진 뒤 동료들이 열어본 그의 사물함에는 3년 전 사망한 후배 강기봉(당시 29세) 소방사의 근무복이 걸려 있었다.

고 정희국 소방장의 사물함에 있던 고 강기봉 소방교의 근무복. 사진 소방청·울산소방본부 제공

고 정희국 소방장의 사물함에 있던 고 강기봉 소방교의 근무복. 사진 소방청·울산소방본부 제공

 두 사람은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로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러 출동했다. 함께 울산 온산119안전센터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강변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구조요청에 현장에 달려갔지만,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두 사람이 물살에 갇히게 됐다.

 정 소방위는 전봇대에, 강 소방사는 가로등에 의지하다 강 소방사가 “더는 못 견디겠어요”라고 했고, 정 소방위는 좀 더 버틸 수 있었지만 후배만 보낼 수 없어 함께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꼭 함께 살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 후 3년. 동료들은 정 소방위가 슬픔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그의 차 안과 휴대전화 등에서는 “너무 괴롭다”는 내용의 A4 용지 25장 분량의 글이 사후 발견됐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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