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8)
‘미국 위스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브랜드는 짐빔과 잭다니엘이다. 대량생산을 하는 두 업체는 미국 위스키를 값싸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소매가로 한 병에 2만~3만원 대라 위스키치곤 저렴해서 바에서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칵테일 만드는데 쓰는 ‘리큐어’와 비슷하거나 조금 비싼 가격이라 칵테일 제조에도 많이 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미국 위스키, 특히 버번위스키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급 버번위스키’ 수요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발맞춰 버번 브랜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프리미엄 버번위스키를 출시한다. 짐빔과 잭다니엘도 예외는 아니다. 오랜 숙성을 거쳐 다양한 풍미를 담은 오크통 중에 마스터 블렌더의 간택을 받은 위스키가 ‘하이엔드 버번(High-end bourbon)’이 된다.
하이엔드 버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번은 ‘파커스(Parker’s)’다. 헤븐힐 증류소 6대 마스터 디스틸러였던 ‘빔 파커스’의 이름을 빌려 출시하는 한정판 위스키로, 첫 제품은 그의 근속 45주년을 기념해 발매됐다. 몇 년 전 처음 맛을 봤을 때, ‘버번이 이런 맛이 난다고?’라며 놀란 적이 있다. 일반 버번위스키에선 느낄 수 없는 다채로운 풍미. 고숙성 스카치 싱글몰트에 뒤지지 않는 버번이었다. 최근 발매된 ‘파커스 11년 싱글배럴’을 어렵게 구해 마셔봤는데, 고소한 견과류와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 맛이 어우러진 멋진 버번위스키였다.
‘켄터키 아울(Kentucky Owl)’이라는 하이엔드 버번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마니아가 많다. 숙성 기간이 짧지만 훌륭하게 숙성된 버번과 오래 숙성된 버번을 블렌딩해 한 번에 1000~1500병씩 발매한다. 올해까지 아홉 번째 배치가 출시됐는데, 한 병당 70만~90만 원이라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미국 평균 월급이 80달러였던 시절부터 50달러의 최고급 위스키만을 만들던 전통을 이어가며 버번 컬렉터를 위한 버번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특징은 병입 시 물을 섞지 않고 60도 전후의 ‘배럴 스트렝스(barrel strength)’로 만든다는 것. 실제로 맛을 보니 높은 도수에서 오는 짜릿한 스파이시와 그 안에서 층층이 퍼져나가는 실키한 질감 속 바닐라 오크와 민트향의 조화가 돋보이는 위스키였다.
‘믹터스(Michter’s)’도 좋은 하이엔드 버번을 출시한다. 믹터스 20년과 25년이다. 위스키 숙성 확인을 위해 모든 믹터스 배럴을 샘플링하면서, 특히 17년 이상 숙성된 배럴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특별한 맛의 경지에 오른 배럴만 골라 믹터스 20년과 25년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는 출시 1년 전에 예약을 받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매년 금세 동이 난다고 한다. 나는 아직 맛을 보지 못했지만, 맛을 본 사람은 반드시 한 번 더 마셔볼 정도로 훌륭하다고 들었다.
이 밖에도 ‘패피 반 윙클(Pappy Van Winkle)’, ‘조지 티 스택(GEORGE T. STAGG) ’등 버번 마니아의 심장을 뛰게 하는 버번위스키가 있다. 이런 버번위스키 한 잔의 감동은 스카치 위스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에도 여러 가지 하이엔드 버번이 수입되고 있다. 위스키 전문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격 때문에 한 병 사는 게 부담된다면, 위스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바에 가서 맛을 보자. ‘값싼 위스키’라 생각했던 미국 위스키가 놀라운 반전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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