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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위스키 원주 직접 마셔본 하쿠슈 증류소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7)

고작 1년 전이지만 아득한 추억이 있다. 해외여행이다. 1년 전, 9박 10일 동안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후쿠오카부터 도쿄까지, 위스키 전문 바와 위스키 증류소를 가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맛을 본 술 종류만 200종이 넘는다. 코로나19가 유행할 게 예상됐다면 조금이라도 더 마시고 오는 건데 아쉬울 따름이다.

일본 위스키 증류소는 네 군데를 갔다. 에이가시마, 나가하마, 치치부, 그리고 하쿠슈다. 만일 일본 여행이 편해졌을 때 위스키 증류소에 가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네 곳 중 하쿠슈를 추천하고 싶다. 일본 수도 도쿄에서 접근성이 좋고, 규모가 커서 투어프로그램도 잘 짜여져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증류소 주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1973년, 하쿠슈 증류소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의 증류소 건물. [사진 김대영]

1973년, 하쿠슈 증류소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의 증류소 건물. [사진 김대영]

하쿠슈 증류소는 일본 산토리의 야마자키 증류소에 이은 두 번째 증류소다. 야마자키와 다른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내고자 전국 각지의 물맛을 조사한 끝에 하쿠슈가 선택됐다. 하쿠슈 증류소에서 사용하는 연수로 위스키를 만들면, 가볍고 부드러운 스타일의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야마자키 위스키는 무겁고 화려한 스타일이라, 서로 다른 위스키 원주를 가지면서 산토리는 다양한 위스키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초창기 하쿠슈 증류소의 거대한 증류기. 현재는 새로운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김대영]

초창기 하쿠슈 증류소의 거대한 증류기. 현재는 새로운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김대영]

작년 12월, 페이스북 ‘위스키러브’ 커뮤니티에서 스무 명 정도를 모아 하쿠슈 투어에 나섰다. 예약한 시간에 증류소를 방문하자 친절한 안내원을 따라 투어가 시작됐다. 발효, 증류, 그리고 숙성까지.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고 배우면서 위스키에 대한 이해를 십분 높였다. 그리고 게스트룸에서 테이스팅 타임. 하쿠슈 위스키로 직접 하이볼 칵테일을 만들었다. 단순히 위스키를 맛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집에서 더 맛있게 하이볼을 즐길 수 있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쿠슈 증류소에서 만들어본 민트잎이 들어간 하쿠슈 하이볼. [사진 김대영]

하쿠슈 증류소에서 만들어본 민트잎이 들어간 하쿠슈 하이볼. [사진 김대영]

하쿠슈 증류소 투어의 가장 큰 혜택은 ‘BAR 하쿠슈’에서의 자유 시음이다. 세계적 인기로 비싸진 일본 위스키지만, 여기에선 매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야마자키 25년, 하쿠슈 25년, 히비키 30년…. 한국에선 한 잔에 몇 십 만원 하는 위스키를 몇 만 원에 맛볼 수 있다. 또 쉽게 접하기 힘든 산토리의 특별한 한정판 위스키나 희귀 스카치 위스키도 만날 수 있다. 위스키 마니아에게 가장 좋았던 건, 블렌디드 위스키의 구성 원주를 직접 마셔볼 수 있었던 점. ‘이런 위스키 원주가 포함돼 위스키의 맛을 만들어내는구나’라는 걸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

왼쪽부터 하쿠슈 25년, 야마자키 25년, 히비키 30년(좌). 서울의 모 bar에서 마신 하쿠슈12년 하이볼(우). [사진 김대영]

왼쪽부터 하쿠슈 25년, 야마자키 25년, 히비키 30년(좌). 서울의 모 bar에서 마신 하쿠슈12년 하이볼(우). [사진 김대영]

언제 해외 여행을 다시 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시 자유롭게 해외를 오갈 수 있을 때까지, 위스키 숙성처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오는 쾌락은 더 즐거울 거라 믿으며 과거의 여행을 떠올려본다. 오늘은 하쿠슈 하이볼 한 잔 마시며 추억에 위스키 향을 더해야겠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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