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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힘들 때 마음의 그늘 지워준 ‘생명의 물’ 위스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6)

지난 9월에 폐업한 서울 논현동의 요가 학원. 이 요가 학원은 가구와 장비를 그대로 둔 채 ″코로나시대 매출 감소로 요가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닫았다. [중앙포토]

지난 9월에 폐업한 서울 논현동의 요가 학원. 이 요가 학원은 가구와 장비를 그대로 둔 채 ″코로나시대 매출 감소로 요가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닫았다. [중앙포토]

요즘처럼 죽음을 많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행히 나의 죽음은 아니다. 타인의 죽음이다. 첫 계기는 한 승무원의 극단적 선택. 코로나19로 무급휴직이 이어지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장기는 기증해달라. 세상에 잘 왔다가 편안한 안식처로 떠난다”며 세상을 떠났다. 또 좋아하던 개그맨 박지선 씨도 세상을 떠났다. 3차 대유행으로 코로나19를 계속 안고 살아야 하는 이번 겨울, 더 많은 죽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세상이 두려워 마음속에 그늘이 진 경험은 두 번 있다. 한 번은 군에 있을 때, 또 한 번은 첫 직장에서 물러나 프리랜서로 지낼 때다. 군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견뎌냈지만 사회에 있을 때는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정규직 취업에 계속 실패하면서 ‘남들은 다 저렇게 잘 지내는데’라는 사회적 열등감이 계속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무작정 일본 후쿠오카로 갔다. 3개월이라는 여행비자 체류로 잠시나마 한국 사회를 벗어나고 싶었다.

후쿠오카 bar kitchen과 오너 바텐더 오카 상. [사진 김대영]

후쿠오카 bar kitchen과 오너 바텐더 오카 상. [사진 김대영]

거기서 위스키를 만났다. 처음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위스키가 많아 호기심에 찾았을 뿐이다. 그런데 매일 밤 나를 기다리는 바텐더(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손님과의 만남, 그리고 마시면 마실수록 깊은 위스키의 세계가 마음의 그늘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위스키를 마시는 사이, ‘살아야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위스키는 게일어로 ‘생명의 물’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그 생명의 물이 마음의 단비가 된 셈이다.

‘힘든 인생 이야기하면서 웬 위스키냐’고 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위스키가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위스키를 통해 열정을 되살렸고 호기심이 발동했으며, 위스키를 향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 모두가 내 삶을 버티게 해준 지지대다. 이 지지대가 부러지지 않아야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혹시 주변에 코로나19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 물론, 위스키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진 pixabay]

혹시 주변에 코로나19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 물론, 위스키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진 pixabay]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김완 씨는 자신의 책에서 극단적 선택을 막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는 그 순간 살아야 했고, 당신을 살려야만 내가 계속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배를 타고 있다”고 썼다. 함께 배를 타고 있다는 동지 의식이 중요한 것 같다. 혹시 주변에 코로나19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 물론, 위스키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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