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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위스키 맛도 아는 만큼”생산과정 공개하는 증류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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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4) 

위스키를 마실 때 알 수 있는 정보는 숙성 연수와 알코올 도수 정도다. 좀 더 알 수 있는 거라면 증류한 해와 병입한 해, 오크통 타입 정도다. 그런데 ‘위스키 생산의 모든 과정을 소비자에게 낱낱이 알려주겠다’는 증류소가 있다. 아일랜드의 ‘워터포드 증류소’다. 이 증류소가 많은 정보를 알리는 이유는 위스키도 ‘떼루아(Terroir)’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워터포드 싱글팜 위스키. [사진 김대영]

워터포드 싱글팜 위스키. [사진 김대영]

‘떼루아(Terroir)’란, 와인이 만들어지는 기후, 토양 등의 자연환경, 또는 자연 환경으로 인한 와인의 독특한 향미를 말한다. 워터포드 증류소는 떼루아가 위스키에도 분명한 작용을 한다고 믿는다. 바로 위스키의 원재료, 보리를 통해서다. 보리가 경작되는 땅의 토질과 기후 등에 따라 위스키 맛도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하나의 농장에서만 재배된 보리로 ‘싱글팜’ 위스키를 만들었단다.

워터포드 싱글팜 위스키의 병 뒷면에는 ‘F014E01-02’와 같은 코드가 적혀있다. 이 코드를 워터포드 증류소 홈페이지에서 입력하면, 위스키가 만들어진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보리를 땅에 심고, 수확· 몰팅·발효·증류·숙성· 보틀링하기까지 모든 타임라인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토양의 깊이별 단면 사진도 있다. 보리의 품종, 발효에 사용한 물과 효모, 그리고 발효 시간도 나온다.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과 각 오크통을 만든 쿠퍼리지(오크통 장인) 이름, 스피릿을 채운 날과 스피릿 양도 자세하게 나온다. 또 위스키를 만들 때 각각의 오크통을 얼마의 비율로 블렌딩했는지도 명시되어있다. 위스키가 만들어지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기록해놓은 것이다.

아일랜드 바노(BANNOW) 섬 농장의 토질 단면. [사진 워터포드 증류소]

아일랜드 바노(BANNOW) 섬 농장의 토질 단면. [사진 워터포드 증류소]

보리가 재배된 농장 주변 환경도 자세히 보여준다. 바닷바람이 보리밭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라든지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녹음파일로 제공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기분 좋은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해당 농장은 물론이고 아일랜드조차 가본 적 없지만, 이 소리를 통해 단숨에 보리밭 한가운데 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리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이야기는 유튜브 영상으로 보여준다. 인상 좋은 농부 아저씨의 푸근한 아일랜드식 영어 발음이 퍽 듣기 좋았다. 그리고 시골 농장의 풍요로움과 대가족의 행복함이 물씬 느껴지는 영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 멀리 있는 아일랜드의 농장이지만, 영상을 통해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아일랜드 바노 섬 보리 농장 주인, 하퍼(Ed Harpur). [사진 워터포드 증류소]

아일랜드 바노 섬 보리 농장 주인, 하퍼(Ed Harpur). [사진 워터포드 증류소]

이 모든 정보를 접한 뒤에 위스키 맛을 봤다. 향은 달콤한 꿀향과 허브향이 함께 있다. 맛은 몰티하면서 바닐라, 청사과 느낌에 시트러스도 약간. 피니시는 약간의 짭짤함과 스파이시, 기분 나쁘지 않게 달콤한 맛으로 마무리 된다. 보리로 만들어진 스피릿 자체의 맛을 극대화시킨 느낌이었다. 위스키 향과 맛도 아는 만큼 느껴지는 걸까. 위스키를 평소와 다르게 마시는 행위, 그 자체가 또다른 떼루아인지도 모르겠다.

위스키가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정보를 접한 뒤에 마시는 한 잔. [사진 김대영]

위스키가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정보를 접한 뒤에 마시는 한 잔. [사진 김대영]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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