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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스턴트 위스키'는 어때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1)

위스키는 ‘숙성의 미학으로 태어난 술’이라고도 한다. 위스키 맛과 향은 오크통 숙성으로 만들어진다. 숙성 과정에서 위스키 스피릿과 오크통 성분이 섞여 다양한 향을 만든다. 적게는 2~3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모든 위스키는 숙성을 거쳐야 세상에 나올 수 있다. 한 잔의 위스키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줄여 더 빠르게 위스키를 만들려는 회사가 있다. 미국의 ‘비스포큰 스피리츠(Bespoken Spirits)’는 나뭇조각에서 필요한 성분을 빼내 위스키에 섞는 방법으로 위스키를 빠르게 숙성시킬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커피 원두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 애런 CEO는 “우리는 배럴에 알코올을 넣고 나무 성분이 스며들도록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대신, 나무 성분을 추출해 알코올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으로 고급 위스키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비스포큰(BESPOKEN) 스피릿. [사진 비스포큰 스피릿]

비스포큰(BESPOKEN) 스피릿. [사진 비스포큰 스피릿]

‘로스트 스피리츠(Lost Spirits)’이라는 미국 회사도 짧은 시간에 오래 숙성한 위스키 맛을 내는 제품을 내놨다. 위스키 스피릿에 나무 조각을 넣고 빛과 열을 가하면 나무에서 나온 추출물이 스피릿과 만나 위스키에 향을 입힌다는 거다.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은 18개월 이상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했던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 위스키 스피릿을 사용한다. 내부를 강하게 태운 리슬링 오크통에 추가 숙성하는데, 빛과 온도로 짧은 시간에 고숙성 위스키 맛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어보미네이션 헤빌리 피티드 몰트. [사진 김대영]

어보미네이션 헤빌리 피티드 몰트. [사진 김대영]

얼마 전 이 어보미네이션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이 술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다. 처음 향을 맡고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 위스키라 생각했다. 첫맛에서 직관적으로 쿠일라(Caol Ila). 마시다 보니 라프로익(Laphroaig)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쿠일라 느낌이 더 강했다. 최종 결론은 쿠일라 쉐리캐스크 8년, 알코올 도수는 55도에서 60도 사이. 보통의 싱글몰트 위스키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맛과 향의 술이었다. 특히 다양한 위스키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보통 위스키에서 나올 법한 맛이라 더 알아내기 힘들 수 있다.

유명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는 어보미네이션에 9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사진 김대영]

유명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는 어보미네이션에 9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사진 김대영]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인스턴트 위스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세계적인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는 2017년 어보미네이션에 9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그 해 맛본 위스키 중 상위 5% 안에 드는 맛으로 평가한 셈이다. 반면, 스카치 위스키 협회 등은 이렇게 만들어진 위스키를 위스키로 인정하지 않는다. ‘위스키’라는 이름을 쓰는데도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전통적인 위스키와 새로운 기술로 탄생한 위스키 모두 계속 발전하면 좋겠다. 전통도 기술도 최종 목표는 맛있는 위스키일 테니.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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