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92)
“프랑스 와인은 몇천만 원짜리도 마시면서 우리 전통주엔 너무 인색해요.”
얼마 전 한 병에 11만 원짜리 막걸리를 내놓은 어느 막걸리 회사 대표의 말이다. 그는 계약 재배한 유기농 찹쌀과 맵쌀만 가지고 덧술을 세 번 더한 후, 2개월 숙성해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고 제품을 만들었다. 알코올 도수는 18도로 일반 막걸리 6도에 비해 3배가량 높다. 마셔보지 않았지만 막걸리에 정통한 사람들 입을 빌리면 대체로 맛은 좋다고 한다.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패키지.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03/5f54f3a2-74ff-4c60-9da9-2efd0719dcc5.jpg)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패키지. [중앙포토]
대표는 “왜 막걸리는 늘 1달러(약 1100원)짜리여야 하나, 언제까지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를 ‘막 걸러서 막 먹는 술’로만 설명해야 하나”라며 “이제 막걸리도 격 있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막걸리가 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기존 제품과 다를 바 없는 플라스틱병과 뚜껑. 공개된 사진을 보면 병마다 들어있는 술의 높낮이도 제각각이다. 또 고급 차의 대명사를 제품명으로 썼는데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상표권 허락을 받았는지도 의문이다.
막걸리도 얼마든지 ‘격’있는 술이 될 수 있지만, 이 방법은 잘못된 거 같다. 스카치위스키는 한정판 마케팅을 많이 하는 주류인데, 제품 포장부터 내용물 선정과 스토리텔링까지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한 번도 한정판 위스키의 포장이나 내용물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다. 외국 술에 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전통주보다 위스키를 더 많이 접해 위스키에 더 인색한 편이다. 깐깐하게 외국 술을 따지고, 후하게 이 막걸리를 살펴도 외국 술에 기울 수밖에 없다.
![한정판 싱글몰트 위스키 로즈뱅크(ROSEBANK) 30년. 장미꽃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사진 로즈뱅크 홈페이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03/98dd24d4-3ea8-4cad-a124-962b78316a0b.jpg)
한정판 싱글몰트 위스키 로즈뱅크(ROSEBANK) 30년. 장미꽃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사진 로즈뱅크 홈페이지]
물론 자신만의 색깔로 고급 마케팅을 잘하는 전통주도 있다. 하지만 안동소주를 검색하면 검색 첫 페이지 광고에 ‘안동소주 로얄 OO년’이라는 제품이 나온다. 수년 전부터 스카치위스키 ‘로얄 살루트(Royal Salute)’를 모방한 병 디자인과 제품명을 지적받았지만, 이걸 만드는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 하나만 많이 팔면 돼’라는 생각이 '전통주'라는 술 전체 이미지에 먹칠하는 꼴이다.
한 병에 11만 원짜리 막걸리를 만든 회사 대표는 이 막걸리를 증류해 고급 증류주를 만들 생각도 있는 모양이다. 하루빨리 그 제품이 출시되면 좋겠다. 플라스틱보다는 좋은 포장 용기에 내용물도 통일하고, 이름도 더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