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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부터 책 접하면 인지능력 좋아져요"

중앙일보

입력

요즘 서울 중랑구의 젊은 엄마들은 신나는 경험에 다소 얼떨떨하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옛 보건소에서 유아 독서교육까지 덤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6개월된 아기는 보건소나 병원에서 DPT 3차 접종을 하는데 이제 세상이 좋아져 '문화복지 서비스'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무료다.

산모들은 살가운 표정의 자원봉사자들에 둘러싸여 책 모양의 장난감(토이북)과 그림책을 비롯한 가이드 북 등이 담긴 '북스타트 가방'꾸러미를 건네받는다. 이 풍경은 북스타트 운동의 국내 상륙을 말해준다.

중랑구에서 시범 실시 중인 북스타트 운동의 맨 앞줄에 서해성(42.북스타트운동 한국위원회 사무처장)씨가 서있다. 이 운동은 영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에 해당한다.

도정일(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위원장을 보필하는 그는 알고 보면 최근 3~4년새 독서운동을 포함한 문화운동의 숨어있는 연출자다.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의 사무처장 자격으로 10대들에게 독서 붐을 일으킨 진원지인 MBC-TV '!느낌표'의 실무책임자로 '기적의 도서관'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그이다.

"북스타트는 '아기에게 책을'이라는 모토로 1992년 영국의 버밍엄에서 처음 시작됐다 7~9개월 아기들에게 책을 나눠준 뒤 이들의 변화를 5년 동안 추적했더니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이 아기가 인지능력 등에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세 배 이상 앞섰어요. 이제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이런 문화복지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서씨는 문화주의자 혹은 인문주의자다. 그런 그는 우리 사회에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의 기억이라고 해봐야 자연 재해 때 국민성금을 내는 게 전부였다.

따라서 북 스타트는 영재교육의 차원을 떠나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을 심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그런 '문화의 우회로'를 거쳐야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활엽수' 등 소설을 쓴 작가인 서씨는 선배 작가 황석영씨가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장'이라고 불렀을 만큼 오지랖 넓은 활동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실무를 맡았는가 하면, 서울대 백낙청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시민방송이 지난 해 첫 전파를 쏘는 데 숨은 산파역이기도 했다. 그는 이 북스타트 운동의 거점이 보건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민들에게 개방된 보건소를 택함으로써 교육과 문화의 기회 불균등을 해소하자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의 모자(母子) 보건, 문화 복지죠. 또 북스타트는 책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도서관을 찾게 되고 또 북스타트에서 관리하는 홈페이지를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때문이죠."

이 문화 대안운동의 관건은 재원 확보. 그는 이 사안에 대해서도 낙관을 했다. "현재 교보문고와 출판사 문학동네.보림출판사, 그리고 이랜드 복지재단 등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범사업이 끝나는 올해 말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정부 예산과 기업지원을 기대하고 있죠. 미국의 경우 연방 정부의 지원은 물론 코카 콜라.월트 디즈니.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운동이 장기적으로는 최고 5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스타트가 디지털 중심의 문명이 갖는 위험성에 대처하는 면도 있다고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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