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내 방역체계 구멍

중앙일보

입력

보건 당국은 지금까지 세계보건기구(WHO)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판정 기준을 바이블처럼 존중해 왔다. 기준을 너무 보수적으로 적용한다는 비판에 대해 "폐렴 증세도 없는 사람을 환자로 분류하라고 하면 우리더러 새로운 기준을 만들라는 말이냐"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최근 며칠새 이 기준이 흔들리는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의심환자를 격리하는 기준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 위험지역 기준 혼선

WHO의 사스 판정 기준은 세가지다. ▶위험지역을 다녀왔고 ▶38도 이상의 열이 나고 마른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고 ▶폐렴 증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조건에 해당하면 의심환자(Suspect)가 되고 폐렴증세까지 나타나면 추정환자(Probable)가 된다.

WHO가 지정한 위험지역은 ▶중국 베이징(北京).광둥(廣東).홍콩.네이멍구(內蒙古).산시(山西) ▶대만▶싱가포르▶베트남 하노이▶캐나다 토론토▶영국 런던▶미국 등이다.

반면 보건원은 중국 전역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하는 대신 대만.런던.미국 등 세 곳은 위험지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2차 감염이 없어 '안전지대'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22일 현재 대만은 12명, 영국은 1명이 아직 사스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도 39명의 환자 중 아직 앓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혼선에 대해 보건원은 "국내의 위험지역 분류기준은 미국 질병통제관리센터(CDC)의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 격리 기준도 모호

의심환자에 따라 격리 기준이 다르게 적용됐다. 지난 4일 중국 광둥성에서 입국한 30대 A씨는 격리병원에 입원했다가 증세가 나아져 보건 당국의 검사를 받고 퇴원했다. 그후 A씨는 15일 사스의 원인균인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오자 다시 입원했다.

반면 같은 날 중국 다롄(大連)을 다녀와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온 20대 B씨는 이미 퇴원한 상태였지만 재입원하지 않았다.

또 중국에서 사스가 계속 확산되자 18일 베이징과 광둥성 입국자에 한해 체온검사를 시작했다. 이 지역 입국자들은 고열만 나면 호흡기 증상이 없어도 바로 격리입원돼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아직 체온검사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입국하는 하루 4천명 중 6백명 정도만 검사를 받는다. 보건원은 중국 전역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했으면서도 체온검사 대상을 달리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 탑승 전 대책 부재

보건원은 중국에서 승객의 체온을 재 고열이 나면 비행기에 태우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어 원천적인 격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고열 증세가 있더라도 승객이 타겠다고 하면 거부하지 못한다"면서 "일부 승객은 해열제를 먹고 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