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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갈린 김기덕 평가…"여성 혐오자" VS "칸·베니스·베를린 휩쓴 감독"

중앙일보

입력

11일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숨진 김기덕 감독. 사진은 201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대상)을 차지하고 취재진 앞에 선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11일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숨진 김기덕 감독. 사진은 201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대상)을 차지하고 취재진 앞에 선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논란의 감독”(가디언), “베니스‧칸‧베를린 휩쓴 감독”(데드라인)…. 11일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영화감독 김기덕(60)에 대해 외신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11일 “논란이 돼온 감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폭력적이면서도 미학적인 도전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 중 영화 ‘섬’은 영국 영화 등급위원회로부터 동물 학대 혐의로 제재받기도 했다”고 김 감독을 소개했다. 또 “김씨의 감독 경력은 2018년 3명의 여성에 의해, 단골 협업 배우 조재현과 더불어 강간 및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면서 탈선했다”면서 “김씨의 성추행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으나 (여배우 손찌검에 대해) 500만원 벌금이 부과됐다. 김씨는 고소인과 관련 방송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소송에서 패소했다”고 그간의 법정공방을 상세히 보도했다. 미국 UPI통신은 “김 감독의 영화엔 감정‧육체적 고문, 동물학대, 성관계 등이 담겨있다”면서 “김씨는 그의 영화에서 여성혐오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 연예매체 ‘데드라인’은 세계 3대 영화제 석권 등 “예술영화 감독”으로서 명성을 비중 있게 다루며 성추문은 언급 정도에 그쳤다.

버라이어티, 김기덕 생전 신작 구상 소개

매년 칸‧베를린영화제 등에서 공식 데일리를 발행하는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도 “개성 강한 한국 감독 김기덕이 사망했다”며 ‘미투’ 논란에선 한 발 뺀 제목의 부고를 냈다. 버라이어티는 “MBC의 탐사 뉴스쇼 ‘PD수첩’(2018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거가 더 많이 드러나면서 한국에서의 그의 경력은 사실상 끝났다”고 짚었지만, 기사의 상당 부분을 김 감독이 생전 구상했던 신작 소개에 할애했다. 에스토니아 영화연구소의 에디스 셉 대표를 인용해 “지난 9월 김씨가 새 영화 ‘비, 눈, 구름 그리고 안개(Rain, Snow, Cloud and Fog)’의 한국‧에스토니아 공동 제작을 신청하기 위해 해당 기관에 접촉했지만, 신청 기한이 늦어 2021년 1월에 다시 신청할 예정이었다”면서다.

[사진 MBC ‘PD수첩’]

[사진 MBC ‘PD수첩’]

이 인터뷰에서 셉 대표는 “그의 모든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면서 “지난 가을 그를 잠깐 만났을 때 아마도 그는 사적으론 마음고생이 심했겠지만, 진정한 핵심역량의 창작자였고 재능이었으며 특히 차기작을 묘사할 때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고 전했다.

김기덕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기 전까지 세계 3대 영화제 중 최고상을 받은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감독이었다. 충무로 이단아로 불리며 밑바닥 인생의 극단적 심리와 폭력성, 성폭행 등을 충격적인 영상에 담아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은곰상), 같은 해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2011년 칸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석권했고,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대상(황금사자상)을 차지하며 같은 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2018년 ‘미투’ 물결 속에 그의 영화가 만들어진 현장 역시 영화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다는 폭로가 잇따르자 해외로 출국해 활동해왔다.

"끔찍한 폭력 행사…기리는 건 잘못된 일"

칸‧베를린‧베니스영화제 등은 그간 수상 영화감독이 사망할 경우 공식 홈페이지에 추모 메시지를 올려왔지만, 김기덕 감독에 대해선 13일 오후 3시 현재 세 곳 모두 공식 홈페이지가 잠잠하다. 한국영화계에서도 추모는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생충’ ‘아가씨’ 등 한국영화 영어 자막을 번역해온 평론가 달시 파켓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2018년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의혹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나는 수업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가르치길 중단했다”면서 “만약 누군가의 삶에서 그런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 적었다. 영화평론가이자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의 남편 피어스 콘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김기덕 감독)가 촬영장에서 했던 끔직한 행위에 대한 언급 없이 그에 대한 애도가 (특히 서양권에서) 쏟아지는 것을 보고 굉장히 슬펐다”면서 “그가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는 절대 잊어선 안 되겠지만, ‘괴물 같은 성폭력’의 희생자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김기덕사건공대위가 여배우 성폭행 등 혐의에 대해 사과 없는 김기덕 감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앙포토]

지난해 4월 김기덕사건공대위가 여배우 성폭행 등 혐의에 대해 사과 없는 김기덕 감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앙포토]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김영덕 프로그래머 등은 김 감독에 대한 논란을 잘 모르고 추모사를 밝힌 해외 영화인들을 위해 페이스북에 영어 설명을 올리기도 했다. ‘벌새’의 김보라 감독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8년 미투 폭로 외신 기사를 공유하면서 “내가 영화학교에 다닐 때 영화계의 여성 동료들로부터 절대 김기덕 영화 현장에서 일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한국 영화계 사람들은 그가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며 “나는 그를 애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영어로 적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기덕 회고전 같은 기획은 나와선 안 된다”고 올린 글엔 하루도 채 안 돼 '좋아요'가 450개 넘게 달렸다.

"기덕이 형 잘 가요" 추모 목소리도

반면 일각에선 애도의 목소리도 나왔다. ‘신과함께’ 제작자 원동연 대표는 12일 “참 외롭게 가시네요. (중략) 기덕이 형 잘 가요”라고, 영화 제작자 이준동 대표는 “그의 영전에 꽃 한 송이 술 한잔 바친다”고 각각 페이스북을 통해 추모했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1일 본지와 통화에서 “한국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고 전했다.
한편, 김기덕 감독의 시신은 라트비아 현지에서 화장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유족의 국가 간 이동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12일 연합뉴스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유족이 대사관에 장례를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이에 따라 관련 절차를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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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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