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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중에 제일 진짜” 이병헌 연기인생 30년 담은 '배우 연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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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

새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

이 배우, 1991년 KBS 공채탤런트로 데뷔 초엔 X세대 대표 ‘청춘스타’로 꼽혔다. 여섯 번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로 한국영화 르네상스에 올라탔고, 드라마 ‘올인’(SBS) 등 일본 한류열풍, 할리우드 진출을 거치며 한 번도 ‘스타’에서 내려온 적 없다. 올해 데뷔 30년차 배우 이병헌(50) 얘기다. 그의 연기인생을 분석한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이 나왔다.
“배우 이병헌을 돌아보면 30년 한국 엔터테인먼트 역사가 보이죠.” 21년 차 영화 저널리스트 백은하(45)씨가 10일 본지에 전한 말이다. 이번 책은 잡지 ‘씨네21’ ‘매거진t’ ‘텐아시아’ 기자‧편집장을 거쳐 2년 전 ‘백은하 배우연구소’(소장)를 연 그가 그간 지켜봐 온 이병헌과, 동료 배우‧감독들의 증언을 더해 농축해낸 288쪽짜리 ‘이병헌 배우학연구서’다. 동시대 한국 대표 배우를 예술가로서 해부하는 ‘액톨로지(Actorology)’ 시리즈 첫 책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주연 배우 이병헌, 송강호. [사진 명필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주연 배우 이병헌, 송강호. [사진 명필름]

“회고록‧자서전이 아닌 지금 가장 활동적인 배우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백 소장이 첫 타자로 이병헌을 떠올린 건 “누구보다 입체적인 활동,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스스로를 증명해온 배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왕과 광대로 1인 2역을 한 첫 천만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캔들에 휘말린 채 선보였음에도 감독판까지 900만 관객을 동원한 ‘내부자들’ 등 “‘연기로는 깔 수 없다’는 말을 정설로 만든 것은 연기 마스터 이병헌이 보여준 직업인으로서의 신뢰감이었다”면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0)로 처음 인터뷰한 이래 이번 책을 위한 추가 인터뷰까지 10여 차례 이병헌을 따로 만나 취재했다.
“이병헌은 친근한 사람이고 철저한 직업인이죠. 좋은 의미로 단순하기도 하죠. 필요 없는 것에 대해 빠르게 벗어던지고 자기가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는 배우예요.”

새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

새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

백 소장은 배우 이병헌을 “가짜 중에 제일 진짜”란 말로 요약했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 네 편을 이병헌과 함께한 김지운 감독의 말을 예로 들면서다. 김 감독은 그를 송강호와 이렇게 비교했다. “송강호는 지금 찍고 있는 영화를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배우라면, 이병헌은 촘촘하고 빈틈없이 창조한 영화적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그 밸런스를 가장 편안하게 맞춰가는 배우”라는 것이다.
“그 개구쟁이 같은 천진함, 순수한 낙천성이 이 배우에게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주고, 결국 그의 연기 세계를 확장시키는 자양분이 되는 것처럼 보여요.”(배우 송강호‧‘공동경비구역 JSA’ ‘놈놈놈’ ‘밀정’)
“이병헌 배우의 몰입은 정말 집요할 정도예요. 결국 상대 배우마저 자신의 기운 속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들어버리거든요.”(배우 전도연‧SBS 드라마 ‘사랑의 향기’, 영화 ‘내 마음의 풍금’ ‘협녀, 칼의 기억’ ‘백두산’)

새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

새 책 『배우 이병헌』(백은하 배우연구소).

책엔 동료들의 솔직한 감탄도 실렸다. 영화 ‘런어웨이’(1995)부터 드라마 ‘올인’,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조 2’ ‘레드:더 레전드’ ‘매그니피센트 7’ 등 이병헌의 분신처럼 작업해온 정두홍 무술감독은 그가 “액션을 하면 멋있고 밸런스가 딱 맞는” 체형이라며 “숙소에서 양말까지 벗고 재봤는데 (키가) 177cm 맞더라”고 “이병헌이 키가 작다는 사람들의 ‘착각’”까지 깨준다.
숫자로 보는 이병헌도 흥미롭다. 올 초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까지 그간 출연작(애니메이션 포함) 35편의 총 극장 관객 수는 8471만9131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도입 전인 1995~2002년 영화는 서울 관객 수만 집계한 결과다. 주‧조연 영화‧드라마를 통틀어 그가 작품 속 캐릭터로 대중과 함께한 총 러닝타임은 3750분에 달한다. 그가 생애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4살 때 관람한 ‘빠삐용’. 극 중 가장 많이 연기한 직업군은 범죄자가 영화 ‘달콤한 인생’ ‘내부자들’ ‘마스터’ 등 13회로 1위였다. 의외로 지난 30년간 단 한 번도 메디컬‧법정물을 한 적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

영화 '내부자들'. [사진 쇼박스]

영화 '내부자들'. [사진 쇼박스]

이병헌의 내밀한 고백도 담았다. ‘내부자들’ 촬영 중반 스캔들이 터져 현장에서 얼굴을 못 들 지경이던 당시, 극 중 정치깡패 안상구가 되어 카메라가 도는 순간 “일주일만에 처음 제대로 숨이 쉬어졌다”는 그다. “벌써 반 이상을 배우로 살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배우로서의 내가 나인 건지, 그 밖의 시간에서의 내가 나인 건지 모를 때가 있어요. (중략) 결국 나에게 연기란 그게 아닐까요?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세계.”
지난달 26일 출간한 이번 책은 2주 만에 2쇄에 돌입했다. 일본어‧영문판도 계획 중이다. 백 소장은 “영화 연구에서 그간 배우에 대한 개별 연구가 빠졌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스크린에서 배우의 얼굴을 보잖아요. 극장을 나서며 즉각적으로 배우에 대해 얘기하죠. 이 배우가 어떤 배우고, 어떤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지, 정확한 언어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단순히 개인사나 호불호로서만 배우를 말하기엔 이들이 예술가로서 해온 것이 아까우니까요. 제 육안으로 직접 목격한 동시대 한국 배우들에 대해 써나가고 싶습니다.”

동료 배우 송강호가 이병헌의 가장 인상적인 영화로 꼽은 '번지점프를 하다'. [사진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이언픽쳐스]

동료 배우 송강호가 이병헌의 가장 인상적인 영화로 꼽은 '번지점프를 하다'. [사진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이언픽쳐스]

영화 '달콤한 인생'.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달콤한 인생'.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출세작인 드라마 '내일은 사랑'(1992). [사진 KBS]

출세작인 드라마 '내일은 사랑'(1992). [사진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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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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