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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업체 이미 곳곳서 '出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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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수출 의존도가 높고 달러화 결제 비중이 큰 전자.반도체.정보통신.자동차 업체들이 환율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는 전자.전기 업종의 경우 원화 강세 기조를 어느 정도는 점쳤지만 예상보다 빠른 환율 하락세에 당황하는 기색이다.

삼성전자.LG전자처럼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회피)하는 데 능하고 외국 바이어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발언권이 꽤 있는 대기업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결제 통화의 달러화 비중이 85%에 달하고, 환율 헤징 능력까지 부족한 중소 수출업계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발등의 불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아예 원화 환율을 1천1백원으로 잡아 여유가 있다. 생산설비의 국산화율이 20%에 불과해 외국산 장비를 도입하고 부품을 수입하는 규모가 만만찮다는 점에서 원화 절상이 오히려 이득인 면도 있다. 하지만 수출 위주 기업으로서 1달러=1천원 시대, 나아가 세자릿수 환율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화 강세 장기화에 대비해 핵심기술 개발, 원가 절감 등 기업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를 수출하는 팬택의 올해 예상 환율은 1천1백50원이었는데 이미 그 수준에 달했다. 팬택 관계자는 "전체 매출의 절반 정도인 달러 매출 가운데 80%가량이 각종 원자재 대금으로 나가는 수출.구매 매칭(일치) 구조여서 환차손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수출 비중이 55%, 달러 결제 비중이 65%에 달하는 자동차도 환율 하락에 취약한 대표적 업종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성익 통상협력팀장은 "우리 업계가 보는 적정 환율은 1천2백원이어서 환율 하락이 장기화하면 수출 전선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예상 환율을 1천1백원으로 넉넉하게 잡았던 현대자동차도 환율시장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국제금융 부서를 중심으로 수출지역 및 결제통화의 다각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도 수출 물량(판매대수의 60%)을 미국에서 가급적 유럽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내수 또는 해외수입 비중이 크거나 외국 바이어에 대한 가격 협상력이 큰 업종은 환율 피해가 덜하다"고 말했다. 철강산업이 전자, 조선업이 후자에 속한다. 철강은 원화 절상폭보다 엔화 절상폭이 크다는 점에서 경쟁국 일본을 따돌리는 데 유리한 국면을 맞았다. 항공.해운업계 역시 환율보다 유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편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중소업계는 수출대금을 현금화하는 데 평균 석달 걸린다. 환 위험에 긴 기간 노출돼 있는 것. 중앙회가 최근 중소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적정 환율은 1천2백10원대. 현재 환율은 이미 이 수준을 5%나 넘어섰다. 중앙회 김종환 부장은 "수출 마진이 5%를 넘는 중소업체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출혈 수출 단계에 접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김상우.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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