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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노화] 1. 불로장생의 묘약 '절식'

중앙일보

입력

'지놈(Genome)에서 므두셀라로'. 현대의학의 흐름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므두셀라'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로 9백69세를 살아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인체 지놈사업으로 조물주의 설계도를 찾아낸 인류는 노화(老化)시계를 멈추기 위한 꿈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과학자들은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화와 질병, 소멸을 차단하는 열쇠 찾기에 나섰다.

그들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1백세인이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새해를 맞아 중앙일보는 노화 방지를 탐구하는 첨단 연구소와 장수촌 탐방 등 인간의 무병장수 꿈을 풀어가는 세계의 현장을 찾아간다.

1935년 미국 코넬대 영양학자 클라이브 매케이는 처음으로 열량(칼로리)을 제한한 쥐가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를 학계에 보고했다.

절식(節食)한 쥐는 평균 48개월을 산 반면 먹고싶은 대로 먹인 쥐는 30개월밖에 살지 못했다. 이어 61년 미국 필라델피아 암연구소의 모리스 로스 박사는 절식을 통해 59개월 동안 생존한 쥐의 사례를 발표했다. 사람으로 치면 1백80세에 해당하는 나이다.

2002년엔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 ) 조지 로스 박사가 15년 동안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절식 실험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쥐와 똑같은 결과를 보였다. 여기서 절식이란 평균 열량 섭취량을 30% 줄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람에게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절식만으로 10년 이상의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숱하게 많은 불로장생의 비방 가운데 가장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검증된 것이 바로 절식이다. 그렇다면 절식은 왜 노화를 억제하고 우리는 어떻게 절식을 실천해야 할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세계적 노화학자 스티븐 스핀들러 교수를 만나기 위해 미국 LA 교외에 위치한 UC 리버사이드대학을 찾았다.

그의 실험실은 쥐 특유의 퀘퀘한 냄새로 가득 찼다. 그의 실험용 가운을 타고 기어오르는 쥐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최근 이색적인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알약 하나로 절식의 노화방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꿈의 신약 개발이다.

"절식의 노화방지 효과를 유전자가 매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는 DNA칩을 이용해 정상적으로 먹인 쥐와 절식한 쥐 간에 나타나는 1만1천여개 유전자 발현(發現)의 차이를 모두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적게 먹으면 이들 유전자가 개체의 생존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체내 염증을 억제하고, 병들고 늙은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며, 독성물질을 빨리 내보내는 방향으로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는다. 따라서 절식하면 오래 사는 것은 물론 암과 심장병.뇌졸중.치매 등 난치병도 피할 수 있다고 스핀들러 교수는 역설했다.

그의 이론은 진화론적으로도 설명된다. 그는 "영양과잉 상태에 있는 여성일수록 초경이 빠르고 폐경이 느려진다. 또 남성은 사춘기가 빨리 온다. 진화론적으로 포식하면 빨리 죽기 때문에 죽기 전에 종족 보존을 위해 생식 기간을 한껏 늘리기 위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절식은 무엇보다 인체 설계도인 유전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쥐의 경우 전체 유전자의 30%에 해당하는 11만여개가 한꺼번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 유전자는 이른바 '발현'(發現)이란 과정을 통해 인체를 조절한다.

과식에 의한 수명단축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과식으로 과도한 영양물질이 체내에 쌓이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성적인 염증을 조장한다. 이러한 염증이 오래 되면 암이나 노화가 유발된다.

둘째, 세포자살을 막는다. 세포자살이란 늙고 병든 세포가 스스로 죽는 현상. 세포자살이 되지 않으면 암세포처럼 불량품으로 돌변해 무한정 증식함으로써 개체를 죽인다.

셋째, 해독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인체는 시시각각 음식과 공기를 통해 수백만 가지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다. 이들이 인체에 탈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유전자를 동원한 특유의 해독능력이 있기 때문. 절식의 수명연장효과는 이러한 인체 역기능의 재조정에 있다.

그렇다면 이미 한평생 먹고 싶은대로 먹고 산 노인들에게 때늦은 절식이 효과가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 였다. 스핀들러 교수는 "사람의 나이로치면 70세 이상에 해당하는 늙은 쥐들을 대상으로 2주 동안만 절식을 시켜도 유전자 발현이 젊어지는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사람의 경우 1년 정도만 절식해도 한평생 절식한 것과 비슷한 변화가 체내에서 일어난다는 것.

적게 먹고 골골거리며 오래 사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란 지적도 잘못된 상식임을 역설했다. 그는 "쥐든 원숭이든 근력과 순발력.지구력 등 체력과 호르몬 분비량 등 활력의 지표들을 조사해보면 30% 절식한 쥐가 마음껏 포식한 쥐보다 오히려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입맛과 식욕을 억제해가며 적게 먹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의사이자 다이어트 이론가였던 버거 박사를 예로 들었다. 버거 박사는 94년 40세의 한창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체중은 1백65㎏. 이론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알약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절식 때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 효과를 체내에서 똑같이 구현해주는 서너가지 화학물질을 찾아내 동물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마음껏 먹어도 노화와 질병을 억제할 수 있는 꿈의 알약이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는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은 많지만 현재까진 순조로운 상태"라며 "운이 좋다면 수년 이내에 동물실험을 마치고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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